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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대덕읍

[대덕읍]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1

장흥문화원 2017. 9. 18. 11:12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1
▶ 대덕읍 연동마을에 있었던 왕비사당의 예전 제사풍습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제를 지낼 때에는 정월 대보름날 남성 제주와 음식 장만할 여성을 정해서 몸을 정갈하게 한 상태에서 제를 지냈고, 제를 지낸 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밤새 대동놀이를 했다.

 

 

제가 객지에서 살다가 29살 때 부락 이장을 봤는데, 그때 당집이 너무 허술해서 옛날 마람으로 엮어가지고 지붕을 올리고, 해년마다. 그래서 이걸 다시 어떻게 기와라도 올려서 다시 짓어 봐야 쓰것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대덕읍에 면장님을 만나가지고 말씀을 드렸죠. 그때 돈으로 5천 원인 것 같은데, 지금 5만 원이라 하니까 내 기억으로는 5천 원인 것 같는데, 그때가 72년도? 그 정도 될 거예요. 그란디. 한 40년 됐지. 그래가지고 거기서 돈 5천원을 줘가지고 건축을 했는데, 그때 보를 뜯으니까 보가 나왔는데, 보가 광무 19년도에 건축을 했드라고요. 고종황제 19년. 한일합방 무렵 될 거요. 그래가지고 그 보를 하나의 기념으로 놔뒀으면 쓸 거인데, 그때는 모르니까 태워 불었죠. 그때는 전혀 무관심이고, 그래서 나도 인제사 생각해보니 그것을 놔뒀으면 쓸 것인데 그랬다, 후회가 돼드라고요. 그란디 불태워버리고, 그것이 없어져버리고 없어. 그래 광무 19년에 건립을 했다. 그것만 우리가 알고 있지요. 제가 알고 있기는.
- (그거 하고 나서 그러면 잔치 같은 것도 크게 했것네요?)
아이고, 그런 거 안해요. 그런 거 없어요. 막걸리나 한잔 먹고 그라제 뭐 그거 잔치 할 것도 없고, 말 것도 없고 그래요. 그것 밲이는 뭐 없어.
- (그때 한번 그랬고, 그 다음에 또 한 번 또 손봤다면서요?)
태풍에, 태풍에 그랬을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다시 건축을 했어요.
- (그때 태풍이면 언젤까? 사라호면 60년대고 70년 이후니까.)
몰라. 먼 태풍인줄은 모르것고, 그때 누가 이장 볼 땔까? 종문씨? 덕종이는 제각 짓은다 그랬고,
- (그때 그러면 지붕이 딱 날라가버렸어요?)

그랬지요. 그래가지고 다시 인자 다시 지었죠.
- (그때 돈은 어떻게 마련했어요?)
그것도 팽이야(마찬가지로) 읍사무소였지요. 그때 누가 이장 본 줄을 내가 기억이 안 나네. 면사무소 면사무소서 줘가지고. 그때도 읍으로 승격됐을 땔 거예요. 읍사무소에서 줘가지고 그것을 짓었죠.
- (그러면 해놓고 제사는 언제?)
정월 보름날. 일년에 한번 정월 대보름날.

- (제를 지내면서 기원 뭐 바라고 그렇잖아요. 축문 같은 거 쓰고….)
그렇죠. 축문을 싸가지고 축문도 읽고. 제사를 지내라라면 전부 뭐 봐요. 뭐 맞은가 안 맞은가 봐가지고. 이 사람이 해도 괜찮것는가? 부락에 뭐 손해나 없것는가 그런 것 때문에 하나도 안 가리끼고 그런 분을 봐가지고 선택을 해서 인자 제를 남자는 집사고 여자가 장만을 해서 모시는데, 그때는 뭐 목욕도 한 일주일 전에 목욕을 하고, 뭐 말하자면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날마다 목욕을 해야 돼요.
- (날마다? 어디서?)
그라제 그말을 할 것인디 안한께 하여튼 대변 보고 그라믄 다시 해야 돼고. 목욕을.
- (그라믄 하루에 똥 두 번 누면 목욕 두 번 하겠네?)
목욕 두 번 하고. 그러고 여기서 목욕을 한다고 그러면 천관산 물줄기에서 내려오는 둠벙이 있어요. 둥벙.
- (아니 정월 대보름 한참 추울 때요?)
정월 대보름 한참 출 때제. 거기서 날마다 목욕을 학, 뭐 대변 보믄 가서 목욕을 하고 뭐 그랬죠.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인자 남자가 집사를 해가지고 축문을 읽고 여자는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모시고는 그날 저녁에 저녁내 메구 치고, 닭죽 쒀서 먹고, 그렇게 재밌게 놀았죠. 옛날에는. 그렇게 재밌게 했제. 지금은 나가도 안 해요. 나가도 별로 안 해.
- (제사 하면서 마을, 완전히 마을….)
마을 잔치를 치다시피 했제. 날새기 했제. 날새기.

- (그라면 집사랑 젯상 마련할 여자를 정할 때, 부부가 아닌 경우도 있것네요?)
그렇죠. 부부가 아닌 경우도 있죠.
- (그게 언제 정도에 끊겼어요? 언제 제일 재미지게 했어요?)
그때가 70년대였어요. 70년, 80년.
- (그때는 애기들도 여기가 많았어요?)
그렇죠. 애들도 많았고, 도시로 안 가고, 그럴 때가 제일 성수기였다고 봐야죠.
- (그때 젤 부잡했던 놈 말 하나만 해주세요. 그때 사고치고 말 안 듣고 당제 치를 때 이렇게 막….)
그런 사람은 없어요.
- (에이, 없어. 얘기 하믄 나오등마 또. 전부 착하고 모범생들만 있었어요?)
그렇지요. 그걸 하도 못해요. 그걸 하면 죄 받었다고 하도 못해요.
- (그러면 당제를 지내면 그런 뭐 편하게 됐다는 그런 뭐 내력도 없는가?)
뭣을 편하게 지내? 그런 것은 없고. 그거는 없어. 그런 말은. 그전 말이고.
- (제사 지낼 때 음식 몇 가지나 했을까?)
많이는 안 해요. 왜냐면 곶감, 대추, 마른명태, 돼지고기 같은 거 일절 안 쓰고, 나물 세 가지, 국하고 육고기는 없고, 명태하고 떡도 하얀 떡으로 해서. 그렇게 몇 가지만 차려요. 몇 가지만 차리고 유사집에서 나물 같은 거 장만하고 그랴가지고 저녁에 메구 치고 놀고, 그라고 닭죽 쓰고 그런 것은 팽이야 부락 돈으로, 그렇게 해서 아마 했을 거입니다.

- (그때는 제 지내고 나서 술도 한잔씩 하시고….)
그렇죠. 많이 먹제. 엄청 많이 먹제.
-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술 엄청 많이 먹었죠?)
많이 먹었지요. 맥주가 몇 상자씩 들어가고 그랬지.
- (술 먹고 사고 치고 그런 사람은 없고?)
왜 사고를 안 치냐 그러면 그거이 벌 받을까 봐서 그래서 못하죠. 누구든지 잘 할라고만 했지.
- (그랑께 그런 소신이 부락에 있어야 쓰것어 잉?)
제가 뭐 얘기도 잘하고 그래야 되는데, 그런 것도 인자 나이 먹은께 기억력도 없어지고 그렇게 됐어요.

 

 

 

 

 

 

 

 

 

 

                                                   왕비사당

 

 

 

 

 

 

 

 

 

 

 

 

 

자료번호 / 06_12_03_MPN_20160709_MJ_0001
제보자(구술자) / 문종(남, 79세, 연동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