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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읍

[대덕읍] 신리의 성촌 과정과 공성산의 유래

장흥문화원 2017. 9. 18. 17:27

 

 

 

신리의 성촌 과정과 공성산의 유래
▶ 현재의 동신, 서신, 이신 마을에 해당하는 예전의 신리(新里)는 400년 전쯤 김씨와 신씨 양 성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는데, 누워 있는 여성의 형국을 하고 있다. 또 신리에 있는 공성산(孔聖山)은 이 산 아래서 공자와 같은 성인이 날 것이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리가) 성촌이 되기는 한 400년이나 500년 될 것입니다. 그걸 증명하기론 [집 밖, 오른쪽 위쪽을 가리키며] 여기 저 원래 촌 말로 사당나무가 있고, 당산나무가 지금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저 큰 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자 우리가, 우리의 씨족들이 여기에 언제 입촌했는가? 그것도 한 400년 정도나, 전후로 될 것입니다, 족보상으로 문헌을 얘기한다 하믄. 그라고 여기가 인자 김씨, 신씨 주로 양 성이 집촌했는데 신씨가 한 대(代) 더 빨리 들어왔어요. 그것은 저 김씨 족보하고 우리 신씨 족보하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그 해놓은 놈을 내가 대조를 전부 해가지고 이것은 말하는 거입니다이. 그라고 공성산은 어떻게 해서 공성산이라 했을까 하믄 공성산 밑에가 학공재라고 또 있었어요. 저 남교 뒤에, 옛날 학교였던 데에. 그래서 공성산이라는 것이 학공재하고 또 유래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인데, 인자 전해온 말에 의한다믄 ‘여기서 성인이 날 것이다’ 인자 이런 말이 전해졌던 거 아니요? 리 신터가 여자 형국으로 돼 갖고 있어요. 남자 형국이라고도 말할 수 있, 여자 형국으로. [양팔을 벌려서 눕는 시늉을 하며] 요로콤 누워 있는, 요로콤. 그래가지고 공성산이 생겼고, 또 오성산이 또 있어요, [앞쪽을 가리키며] 이 앞에가, 저 앞에 보이는… 거기는 옛날에….

 

 

 

 

 

 

 

 

 

                                                                               400년 이상 된 사당나무

 

 

 

 

 

 

 

 

 

 

 

자료번호 / 06_12_03_FOT_20161213_SCG_0001
제보자(구술자) / 신천균(남, 87세, 서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