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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대덕읍

[대덕읍] 간이학교도 못 됐던 강습학교

장흥문화원 2017. 9. 19. 09:40

 

 

 

간이학교도 됐던 강습학교
▶ 일제강점기 말엽, 대덕에 국민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학교였다. 그래서 거기에 학생 수가 적어서 ‘강습학교’라고 부르는 작은 부속 학교를 하나 설립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초등학교에 1부생만 있었는데, 해방 즈음에 2부제가 실시되면서 2부생이 생겨났다. 해방 전후하여 이렇듯 2부제 의무교육 체제로 바뀌면서 강습학교는 폐쇄되었다.

 

 

인자 국민학교 한나밖에 없제, 여기가. 그때도 일제 말엽이니까 돈 있는 사람이 거기도 들어가고 학생들이 시험 봐서 거그를 들어가요, 모지란께 못 가고. 그래가지고 학교 간 사람이 귀했제, 그때만 해도. 그랬는디 거기다가 학교를 조그맣게 설립을 했어. 그 학교가 인자 간이학교도 못 되고, 급수가. 강습학교라고 그랬제, 강습학교라고 그때. 그래가지고 그 학교가 결국은 해방 후로까지 그 학교가 쪼끔 하다가 말았는디 해방 될랑 말랑 할 때, 일제 때 말엽에는 한 120명까지 됐어, 그 학교 학생 수가. [왼편을 가리키며] 그라고 여기 여, 신월 요런 데서도 거그를 가고. 이 신리 간이학교보다 더 거가 인기가 있었어요. 그렇게 막 운동회도 하고 벨 짓을 다 해. 그런 학교가 있었는디, 해방 후로 학교 댕긴 사람들이 국민학교를 그 전에 1부생만 있다가 일제 말엽에 2부생이라는 거이 생겼어, 2부생이. 2부생이, 2부생이란 것이 그때 한 1학년, 2학년 막 2부생이 생기다가 해방이 돼부렀어. 그래가지고 해방 후로는 전부 인자 2부제를, 교실은 모지라고 교육은 다 의무적으로 시켜야 쓰고 그란께 2부제를 만들어가지고 거기로 다 들어간단 말여. 그란께 20세 넘는 사람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그랬어, 그때. 그래가지고 결국은 그 학교가 폐쇄되다시피 해버렸제. 그래갖고 폐쇄돼버렸어, 그 학교가. 그랬는디 그 뒤로 인자 다시 또 학생 수가 늘어나고 학교가 없고 한께 그 학교를 다시 거기다 설립할라 하다가 못 했어요, 할라고 하다가. 그런 학교가 있었고.

 

 

 

 

 

 

 

 

 


자료번호 / 06_12_03_MPN_20160920_GSG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선관(남, 83세, 잠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