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용산면

[용산면] 스님의 말을 들은 뱅영쇠가 터를 잡아 성촌한 월정

장흥문화원 2017. 9. 19. 13:27

 

 

 

스님의 말을 들은 뱅영쇠가 터를 잡아 성촌한 월정
▶ 부잣집에서 머슴살이 하던 뱅영쇠가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다가 허기진 스님 한 분을 만났다. 뱅영쇠가 자기가 싸온 밥을 주자 스님은 감동하여 터를 잡아주었다. 뱅영쇠가 그 터에 집을 짓고 살며 머슴살이를 벗어나고 성촌하였다.

 

 

월정의 유래가 기본이 그 마을이 없었는데. 우리 뒷집이 지와집이 누대 지금 10대 이상 됐소. 그런 집인디 거기 와서 고입(雇入)한 분이 뱅영서 왔던가 뱅영쇠라고 여기서는 그렇게 불렀답니다. 예전에는 인자 천인들 쇠 자리를 놓거든. 뱅영쇠라고 했다고. 그래가지고 그분이, 지와집 산이 저 건네 초당 뒤에가 있어요. 거기서 나무를 하는데 여기서 머닌까 거리가 머닌까 점심을 싸다놓고 나무를 했던 모냥이에요. 그런디 중이 거그서 잔 쉬어가자고 하더니 거그서 기절 직전에 있더랍니다. 그랑께 아사 직전이여. 대체 중이 댕기다 보니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래 허기가 져서 그랬던 모냥이야. 그래서 그것을 보고 뱅영쇠가 인정이 있었던가 자기 싸온 밥을 권을 한께, “당신은 일을 하고 계신 분인디 밥을 나한테 주면 되느냐고.” 그랑께 “나는 가믄 묵을테니까 염려마시라고.” 그라고 밥을 권했더라요. 그래서 뒤에 밥을 먹고는 기운을 차려서 쉬었다가 가면서 가다가 다시 뒤슬 돌아보더니 오더래요. 오더니 “당신 내말 듣고 집을 하나 지어 볼라냐”고. 그래서 인자 본께 예전에는 중이라 그라믄 아는 것이 있다, 인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래서 그라 것노라고. 이 아래 가면은 월정을 갈치면서, “거그다가 집을 짓고 살면은 당신 고입은 면할 거요.” 그라면서 따라오라 해서 따라갔는데 놈의 밭이드래. 밭이드래요, 그 집터가. 그래서 "내가 돈이 없는데 어트게 여기다 집을 짓겠냐.“ 그랑께. 그래요 그러면 막을 치되, 막을 치되 뒤에 기둥이 밭어덕에 닿겠끔만, 그렇게 해서 막을 치라고 이렇게 보고 요렇게 하라고. 그래서 거기서 막을 치고 사는 것이 그 중 말대로 해서 거그서 놈의 집 면하것 게 그렇게 되았드랍니다. 그래서 성촌이 되았어요. 그란디 이 월정이 그전에 지금 경지 정리를 해서 그라제 주벅 마니로 생겼어요. 주벅 알것죠, 요렇게 밥주벅. 요렇게 돼갖고 끝터리가 납작하니. 그래서 물이 이놈이 요리 돌고 요리 돌고 해갖고 물이 합해진 디요. 거시기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으나 거 살리(山理)란 것이 나도 그 참견을 좀 해서 보닌까 물이 아니면 되들 못해요. 물이 있어야 조화가 나와. 물이 그 합수친 디가 그래서 그 거가 부자가 났어. 그래갖고 그 사람은 인자 힘을 잡은 께 모도 양반 세에 못 살것으니까 떠나 불고. 그라고 인자 그 지금 백씨가 거그서 살다가 거그 백 집이나 받었어요. 그러다가 지금 인자 그것도 때가 있는 것이라 길지 못하고 그렇게 되았는디. 그래서 성촌이 된 거요. 그랑께 잘 사니까 잘 사니까 곤란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갖고 거그서 고입도 하고 거그서 살라고. 그렇게 돼서 성촌이 된거요.

 

 

 

 

 

 

 

 

 

                                                   월정마을

 

 

 

 

 

 

 

 


자료번호 / 06_12_04_FOT_20161129_BNS_0002
제보자(구술자) / 백남석(남, 86세, 상금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