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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용산면

[용산면]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장흥문화원 2017. 9. 20. 10:14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 박학 대감은 축지법을 쓰고 천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화순 드들강에서 훈장을 하는데, 제지기가 성실한데 가난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제지기에게 드들강에 나가면 세 상인이 지나갈텐데 세 번째 상인을 꽉 붙잡으라고 했다. 박학 대감 말을 따르니 세 번 째 상인이 돈을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내시는 성기를 못 쓰게 맨드라불거든. 궁녀들 건든다고. 그래서 고자대감이다, 그래. 내시를 인자 거시기를 못 쓰게, 성기를 못 쓰게 고자를 맨들아분다 하든마, 일부러. 고자, 박고자 대감이라고 쩌어 우리 마을에서 나왔어. 박학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축지법을 했던가봐요. 여 저가 저 수풀 있는데 나무 있는 데가 침간정인데, 침간정. 정자가 있었는데. 우리 저 백 고조께서 여기를 인자 하동부사를 계시다가 초당을 지어겠서. 초당이름이 침간정이야. 마루 [침]짜, 베개 [침]짜 하기도 하고 마루 [침]짜. 저 사이에 시내가 있잖에. 시내 [간]짜, 삼수변에 사이 간 한자, 시내 [간]짜거든. 그래 침간정(枕澗亭)이야. 박학이란 분은 우리 증조부님들하고 같이 동문수학 같이 한 냥반인디. 밤이믄 어디 이슬 맞고 오시거든. 갔다가 새벽에 동틀 무렵에 오시면, “자네 어디를 갔다 온가.” 그라믄 “어디 잔 갔다 오네.” 그 머 한나 갈쳐 달라고 우리 증조부님들이. “아이 엄마 남지 않는 세월에.” 그 냥반 알어겠서. 우리 할아버지들이 단명할지 알아겠서. 엄마 남지 않는 세월에 그라고 저라고 한다고. 그래서 못 배워겠대. 그래서 대차 우리 증조부님이 삼형제 분이었는디 일찍이 초시를 해겠는디, 초시는 예비고시. 초시는 해겠는디 본시는 못 보시고 돌아가셨부러. 하동부사 조카들이. 그래서 벼슬을 못하고 일찌기 돌아가셨어. 박학이란 분은 그 분도 같이 했는디, 그 분이 참 위인이여. 그 냥반 집터가 쩌그 저 지와집 저 집터 였는데. 하동부사를 그만하시고 여기오시면서 여기다 정해겠는디. 그분은 그렇게 특별히 안 냥반이었어. 박학 그분 어서 돌아가신지를 모른대요. 그 냥반 일화가 있는데, 쩌그 화순 드들강 잘 알지요. 거그서 훈장을 하신데 그 제지기가 참 고진한데 참 못살아. 어른들한테 얘긴 들은 얘긴데 박학 그 분의 얘긴디. 한이었단 얘긴디. 그래서 딱해서 “니가 밥 먹을 곳을 좀 구해주마.” 해서 “드들강 어디 거시기 가 있어봐라.” 그라거든. 그러면 “깨끗하게 목욕하고 있어봐라, 그라먼 상인이 지낼꺼다 상인. 세 사람이 세 상인이 지나꺼인디 첫째, 둘째 참 반대할거이다. 턱 떠러불거인디 마지막 셋째를 꽉 붙잡고 사정해라. 그라믄 쾌가 생길 거이다.” 그랬드래요. 그래서 역시 그 냥반 선생님 말씀대로 하니까 됐죠. 밤중에 상인이 지나가시거든, 타악 붙잡고 했더니 역시 마지막 분들한테 도복자리에서 급전을 내주시드래요. “그냥 가꼬가서 살어라. 박학이 시키지야.” 그라고는.[웃음] 그랬다는 그런 일화가 있었는디. 천지를 아는 냥반이었대요. 쩌가 저 서당터가 있거든. 저 대밭 여가 서당자리고 그 옆에가 서당자리 구서당터락해. 그거이 운곡재(雲谷齋)제, 우리 마을 저 운곡재. 구름 [운]짜 고랑 [곡]짜 운곡재, 집 [재]짜. 서당 이름이 그랬대요.

 

 

 

 

 

 

 

 

 

                                                          침간정 자리

 

 

 

 

 

 

 

                                                          운곡재 자리

 

 

 

 

 

 

 

 

 


자료번호 / 06_12_04_FOT_20160705_KJH_0004
제보자(구술자) / 고재현(남, 84세, 운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