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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용산면

[용산면] 나물 뜯고 약초 캐고 나무하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린 부용산

장흥문화원 2017. 9. 20. 11:02

 

 

 

나물 뜯고 약초 캐고 나무하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린 부용산
▶ 어머니와 보리밥 덩어리 싸서 나물 뜯고 나무하러 부용산에 다녔다. 어머니는 약초 캐면 약초이야기, 나물 뜯으면 그 나물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때는 모두가 아궁이에 불을 때던 시절이라 부용산이 거의 나무가 없을 정도로 헐벗었다.

 

 

이쪽은 산이 가깝고 저기 접정은 산이 없기 때문에 이산을 인자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다녔고. 풀도 하러 다녔고 또 그 나물 뜯고. 그라고 인자 어떠게 보믄 이산이 부용산이 어머니하고 같이 인자 워낙 생활을 많이 했고. 머락하까요, 삶의 터전이라 봐야제. 나무도 하고 나물도 뜯고. 삽주라고 창출, 또 머 도라지 더덕 또 머 참나물, 참나물 유명했고 뭐 그런 종류죠. 인자 옛날에 업시산께 시장에따 팔고, 먹기도 하겄지만 시장에다 제법 팔았제. 나물 장사. 용산장에 판 것보다도 더 멀리 자응이나 머 회진 또 여 대덕, 대덕읍장. 그라고 또 그때만 해도 산이 너무 헐버서가꼬, 나물도 있었제마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뜯기 때문에 나물도 귀했제, 귀해. 수요는 많고. 아 그 때는 큰 나무들이 없었죠. 그 때는 나무 보기 힘들었고. 풀배께, 풀 나물 종류만 있었고 나무는 별로 없었죠. 원체 그 때는 땔감이 많이 한 위주라 많이 산이, 땔감을 많이 해가버리니까. 그 땐 인구도 많이 살고, 우리 이 동네도 100호 이상 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땔감이 부족해서 많이 땔감으로 많이, 산이 헐벗었다 할까요? 쩌어 밑에[용산면 소재지 쪽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산이 거긴 나무가 없고, 나무는 요 산에 많으닌까, 그래도 큰산이니까 나무하러 많이 올라왔죠. (산에 가면)어머니가 옛날 또 배고팠던 이야기, 또 나물에, 나물 뜯으면서 나물에 대한 이야기, 또 약초에 대한 이야기. 그러고 또 어머니가 머 보리밥 한 덩어리 싸가지고 가서 어 먹작한 이야기. 에 뭐 그러면서 어머니는 머 이렇게 하얀, 머 토란대나 호박잎사귀, 에 머 하얀 보자기 같은데 이렇게 보리밥 덩어리를 싸요. 그래가지고 어 뭐 된장이나 좀 떠가지고 그거이 전부에요. 보리밥 덩어리, 머 쌀 보일락 말락 해요. 그거 먹고 어머니가 인자 산을 돌아다니면서 뜯어요. 어머니도 물론 배가 고프지만 나도 배가 고프드라고. 그거 묵작 것도 없어 너머 적으니까. 허리춤에 차고 댕기다가. 그런 시절이 지금 보먼 하아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거이 대단해요, 생각해보먼.

 

 

 

 

 

 

 

 

 

                                부용산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0803_LYD_0002
제보자(구술자) / 이영동(남, 63세, 운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