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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용산면

[용산면] 힘이 장사였던 문병곤

장흥문화원 2017. 9. 21. 10:33

 

 

 

힘이 장사였던 문병곤
▶ 문병곤 집안은 대대로 힘이 장사고 재력도 있었다. 보통사람은 어깨 밖에 안 찰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 훌륭한 양반이었는데 시국을 잘못만나 장흥경찰서장을 하다가 물러났다.

 

 

아까 참 우리 문씨들. 문씨들이 자자일촌할 때 그 냥반은 나는 이제 어려서 기억을 못한디, 여기 이 마을에가 문병곤씨라는 훌륭하신 분이 한분 계셨어. 기운도 장사지 재정도 넉넉했지. 또 그래갖고 그 냥반이 유학을 어디로 갔냐 그라믄 그 때 시절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셨다고 하더라고. 그래갖고 일본 가서 유도를 배우시다가 들어셔 가지고, 시국이 변동이 안 되았으면은 대단히 크실 양반이었어. 그란디 시국변동 때문에 장흥경찰서장까지 안저가지고, 장흥사람들한테 못해보고 물러나부렀다 하시더라고. 그렇게 훌륭하신 분인디, 여기가. 그랑께 아무튼 좌우간 이 동네가 인물은 난데여. 근디 문병곤씨 문병곤씨 하면은 아마 우리 장흥에 토대를 잡고 사신 냥반들 거의 모르신 냥반이 없드라고.
- (그분은 일제강점기 때 어떻게 활동을 하셨어요.)
어, 대단하신 양반이여. 거 에러서 이렇게 보면은 딱 보통사람 더수기 우그로 이렇게 올라가불더라고 사람이. 보통사람은 자기 더수기 밲에 안차. 그렇게 그 장골이었어. 그런데 유도 잘했지, 그랑께 그 때 당시 머 우리 에러서 들어보먼 난장 튼다 안하드라고, 옛날에는. 그 난장판에 가서 씨름도 판도 해오고. 긍께 그런 사진들을 즈그 아들들이. 그랑께 지식도 솔찬히 솔찬히 많으신 양반이고. 그 나는 우리 당숙들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는디, 기운이 장사였닥 해, 아버지가. 아버지도 그라고 저 작은 아버지도 그라고. 집안내력. 그랑께 그런 거대한 양반을 아들을 두셨든 것 같더라고. 지금 거그 그 냥반 누나 문병곤씨 누나로 하면은 손지가, 누나 손자제, 거 백승호가 기랑께. 그 함머니가 문병곤씨 누나여. 백승호 함머니가. 전라남도지방경찰청장 하다가 지금 경찰대학 교장으로 가셨제. 그란디 인자 문씨들이라고는 한 냥반도 없이 다 떠부렀제.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0707_LJS_0002
제보자(구술자) / 이정신(남, 73세, 어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