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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면

[용산면] 장원급제한 어산마을 이승(李昇)

장흥문화원 2017. 9. 21. 10:45

 

 

 

장원급제한 어산마을 이승(李昇)

▶ 장원급제한 이승은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산중처사로 여생을 마쳤다.

 

 

집터가 한나 좋은 거이 났다 해싸서, 바로 이 우게 대밭 있는 집이. 그 집이 나로 하며는 12대조 할아버지닌까 한 400년, 약 한 400년. 그 할아버지가 어산을 최초로 들어오셔 가지고 그 집터를 잡어서 사시면서. 원래 그 냥반 고향은, 12대조 할아버지 고향은 용산면 금곡이여 하금. 하금에서 어산으로 올라오신거제. 그래갖고 여기서, 전설을 보면 여기서 지금 말하며는 사법고시제, 그 때 과거. 그란디 그 때 과거가 지금 사법고시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그라더라고. 왜 어렵냐며는 그 때는 고을마다 향교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전라남도에도 몇 군데만 향교가 있었다 하드라고. 그란디 2년에 한 번씩 그 시험이 있어, 암행어사 시험이. 그래갖꼬 향교에서 딱 두 사람씩 추천해줬다 하든마. 인제 유일하게 장흥에선, 그 냥반 존함이 승 짠디, 이 승인디. 처음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셨는디 전국에서 3등. 그란께 지금 내가 사논 집자리 거기서이. 전국에 3등을 했는디 고것도 인자 표절이라고 해가지고.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보면 남의 것 보고 모방했다. 그 때는 순전히 글 짓는 그것이 이제 시험이거든. 근디 남의 것을 보고 모방했다 해가꼬 3등을 줘. 그랑께 이 냥반이 이제 화가 났제. 자기 실력이 그것이 아닌디. 이, 이렇게 나를 무시한갑다, 그라고는 두 번째 가가지고 장원급제를 한 것이여. 전국 일등. 대단한 머리제 머리가. 그란디 벼슬을 줘 정부에서. 벼슬을 준께 안 가셔부러. 내가 느그들 밑에 밥 빌어묵고 살아야. 그래가지고 겨우 인제 그 냥반 직함이 벼슬이라고는 성균관 진사. 그 때는 모든 직함 같은 걸 성균관에서 다 내렸거든 직함을. 성균관 진사 벼슬을 하시고는 그 뒤로 자기는 일로 여생을 마칠란다, 하고. 벼슬도 못하시고 여생을 마쳤다 하시더라고.

 

 

 

 

 

 

 

 

 

                               이승선생 사당

 

 

 

 

 

 

 

 

 


자료번호 / 06_12_04_FOT_20160707_LJC_0004
제보자(구술자) / 이정신(남, 73세, 어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