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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면

[용산면] 밀대, 친일을 해서 먹고 산 사람들

장흥문화원 2017. 9. 21. 11:01

 

 

 

밀대, 친일을 해서 먹고 산 사람들
▶ 일제강점기 6학년이 되어 해방 되었다. 그 전에 한국말 하면 벌을 주고 창씨개명을 당했다. 그래서 5, 6학년이 되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어느 마을이나 밀대, 친일파들이 활약했다.

 

 

6학년 된 게 해방 됐어. 일본말 조금 배왔제. 거 자네도 카도 안가 카도. 카도 저 한국말 하믄 카도 뺐어. 카도 저 머시기 여 한국말 하믄. 카도를 딱 나나조가꼬 한나 앞에 스무 장쓱 엄마 쓱인가 나나주고, 한국말 하믄 카드 주라게, 한국말 했다고. 그래가꼬 일본놈들이 그런 짓거리를 했어. 나중에 검사 하믄 제일 없고 떨어진 놈은 한국말 많이 한 놈인께 욕봐, 그놈을. 아 지금 생각하믄 창씨를 개명하고 말이여. 지금 생각하먼 모르고 살었는디 아아, 일본놈들이 창씨를 개명해부러. 우리가 인천 이간디, 요시까와. 그래서 요시까와로 인자 그때는 안 죽을랑께. 인천이다 그 말이여. 그런 일을 당하고. 그랑게 처음에는 우리 어려서 일본놈들 그랑께 그렇게만 알았는디. 나중에 점점 한 5, 6학년 때 된께는 하, 우리 한국을 일본놈이 뺏어갔구나, 그런 생각이 그때사 나더구만. 첨에는 몰랐어 1, 2학년 때에는. 그랬어 몰라. 그란디 왜정 말이 된께 누구란 소리, 그런 소리는 안한디 친일파가 생기든고. 왜냐면 그때는 지서에 순경놈이, 일본놈이 있어. 일본놈이 있는디 정보를 파악해야 그때 노무자를 보내. 노무자를 보내고. 인자 군대를 보낸 것은 군대를 공식적으로 훈련을 해서 딱 보내니까 인자 그냥 찬찬 나온디. 노무자를 보내면 말이여. 밀대가 들어가서 밀대한테 해가지고 “아무개 잡어가거라, 아무개 잡어가거라.” 친일파 해가지고 산 놈이 있어. 그라고 묵고 살아. 거그서 좀 보태준께. 그란디 가만히 나중에 알아 본께, 우리 여그 뿐이 아니라 각 부락 전국적으로 아조 친일파가 각 부락마다 다 있등마. 그렇게 몰래 탐지해서 보고를 해 전부.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0812_LYS_0001
제보자(구술자) / 이영숙(남, 85세, 접정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