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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동면

[장동면] 주마산 지키는 구시

장흥문화원 2017. 9. 26. 11:15

 

 

 

주마산 지키는 구시
▶ 석교마을 입구에 구시방죽이라고 있는데, 그 곳에 구시를 놓아 도망가려는 주마산을 지키고 주마산 양 옆에 고산사와 용화사를 지어 목동으로 삼았다. 그런데 40여 전 구시방죽의 구시를 석교마을로 옮겼다. 이후 주민 4명이 객사를 하는 등 마을에 재앙이 닥쳤다. 이에 주민들은 제를 올리고 달랬는데 이후 재앙이 가셨다고 한다. 구시에는 늘 빗물이 고여 마르지 않는데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한다.

 

 

내가 장평 탑동에서 43년 전에 석교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이사 와서 새마을지도자를 하면서 겪은 일이여. 장흥서 우리 마을 들어오면 장평 미쳐 못가서 구시방죽이라고 있어요. 거기서 약 1km 들어오면 석교부락이여. 부락 뒷산이 주마산인데 말 [마]에 도주할 [주]라고. 그란디 구시방죽에 구시가 있었어요. 어디서 관할했냐하면, 탑동에서 구시방죽 물을 이용하거든요. 그래서 구시가 탑동 것이다 하고 우리 마을에서는 우리 석교 것이다 하고. 그때 말이 많았습니다. 서로 구시에 대해서 주장했어요. 석교로 이사 와서 한 5년 되었는데, 정씨가 이장을 하고 내가 새마을지도자를 하고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이장이 장평에서 장을 보고, 그 사람이 술을 좋아해요, 술 먹고 어두컴컴할 때 걸어 들어오는데, 무슨 차기 와서 구시를 돌라갈려고 들어 올리는 것을 목격하고 도둑을 잡았습니다. 그래갖고 그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돌아왔는데, 부락에서 탑을 했어요. 구시를 거그다 놯두면 분실하것다 그러니 우리 마을로 옮기자고 한거여.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동의가 되았습니다.

- (구시가 큰가요?)
몇 톤 되지요. 한 2~3톤 될 거여.
- (구시를 누가 만들었어요?)
그것은 모르고. 근디 유래가 어떻게 되았냐하면, 지금 용화사가 주마산 밑에 있고 탑동 뒤로 해서 고산사인가 절이 하나 있는데, 주마산이 도망간다고 해서 구시를 만들었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말을 키우는 목동을 양쪽에다가, 말하자면 절이제, 고산사와 용화사를 지었는데 말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 인자 부락 동의를 얻어갖고 구시를 부락 회관 앞으로 옮겼어.
- (그때가 몇 년도에요?)
한 40여년 되었을 거여. 그란디 그 해에 사람이 객사를 했어요. 옮긴 뒤로 1년 만에 4명이 객사를 했어요. 김 모시기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콩 매상하러 장평으로 오다가 가래뫼못등에서 차에 치여 죽었어요. 거기서 객사를 했습니다. 또 몇 달 있다가 신 모시기가 광주 학동 모퉁이에서 차 사고로 죽었어요. 그 뒤로 또 김 모시기라고 나이가 많았는데 자건거를 타고 가다가 장편 면사무소 미쳐 못가서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 다음에 조 모시기란 사람이 또 죽었어요. 객사를 했어요. 오토바이 사고로. 그래서 부락에서 ‘이대로 (구시를) 놔두었다가는 부락에 화가 미치고 안 되겠다’ 싶어 제를 지내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사고가 없었어요. 미신인데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갖고 지금까지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 (방죽에 있었으면 구시에 빗물이 고였겠네요?)
빗물이 고이면 눈에띠 온 사람이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낫는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라고 생전 물이 보타지지도 않아고.
- (지금도 구시에는 물이 계속 고여 있어요? 가뭄 때도?)
보타지질(마르지 않아) 안 해. 그대로 있제.
- (물은 깨끗해요?)
깨끗해. 한 번 와서 구경해.

 

 

 

 

 

 

 

                                                   석교 말구시

 

 

 

 

 

 

 

 

자료번호 / 06_12_06_FOT_20161208_KDC_0001
제보자(구술자) / 김동채(남, 83세, 석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