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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면

[장동면]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장흥문화원 2017. 10. 18. 14:50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 구술자의 어머니가 34세에 혼자 된 후 어려운 형편에도 평생 재가를 하지 않고 삭일을 하며 외아들을 키워냈다. 구술자인 아들이 이를 애처롭게 생각해 올해 마을입구에 열녀비를 세웠다.

 

 

어머니가 18세에 결혼을 했는데 어버지는 16세였어. 아버지가 나를 19세에 낳았어. 당시 어머니 나이가 21세였고. 결혼은 빨리 했지만 임신이 안됐던 모양이여. 살림이 곤란하고 별로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아버님이 일본 징병되었어. 할 수 없이 끌려가서 해방 이후에 나왔어. 나와서 보니 먹고 살길이 막막해. 그래서 나오셔서 목공을 하신다고 각 처로 돌아다녀. 돈 번다고 남처럼. 그러시다 몇 년 객지로 돌아다니시다 6·25가 터졌어. 당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부렀어. 어머니는 홀로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없는 살림에 걱정했어. 아버지는 13대 종손이고 나는 14대 종손이고. 당시 아버지 나이 32살에 돌아가셨어. 어머니는 34살이고.
- (생활고가 있었겠네요)
생활고가 힘든께 내가 겨우 초등학교 간신히 나오고. 초등학교 때에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니고 어머니는 품 팔러 다니고. 그러고 살았어.
- (어머니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스물세 살에 결혼을 했어. 어머니가 며느리랑 나만 바라보고 살았어. 어머니가 품도 팔러 다니시고.
- (어머니의 어떤 일이 애잔한지요?)
젊은 나이에 혼자되고 그란께 경찰관이랑 와서 집적거려 싸. 그런 일을 안당할라고 굉장하니 참고 살어겠제.
- (어머님께서 주로 뭐해서 돈을 버셨어요?)
길쌈이나 했지 뭐. 남 일 하고 길쌈하고. 초등학교도 간신히 나왔으니까.
-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뭐하셨어요?)
넘의 종노릇하고 넘의 집에 머슴살이 하러 가. 나는 남의 집에 고용살이 하러가고 그랬다. 그 세월을 생각해 보면 하염없어 참말로.

- ( 어머니가 한겨울에도 일을 하셨어요?)
여름겨울 상관없이 했지. 삯바느질은 집사람이 했고 어머님은 성질이 굉장히 선해. 큰소리도 못치고 지내왔어.

- (어머님 열녀비 언제 세우셨어요?)
금년 4월 달엔가 이번에 마을 들어온 입구에 했어.
- (어머님께 혼나신 기억은 없으세요?)
나를 귀히 여겨서 혼낼 일이 있었겄어.
- (어머님이 혼자 아들 키우신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서운한 일 당한 건 없으셨어요?)
그런건 없는디 옆에 사람들이 어떻게 해보까 하고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어. 어림도 없어. 그리고 우리 외갓집이 바로 이 옆마을에 있어. 그분들이 짱짱하게 있었어.

 

 

 

 

 

                                                           효열비

 

 

 

 

 

 

 

자료번호 / 06_12_06_FOT_20161004_AHS_0001
제보자(구술자) / 안형섭(남, 80세, 만년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