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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면

[유치면] 경찰이 원망스러운 한국전쟁 고아

장흥문화원 2017. 10. 24. 10:07

 

 

 

경찰이 원망스러운 한국전쟁 고아
▶ 구술자는 한국전쟁 중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을 피해 피난하다 경찰에게 가족들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구술자는 당시의 정부와 경찰의 형태를 탓하며 평생 원망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왜정 때 학교를 다녔어. 그럼 그때 일본말로 아이우에오 가기구게고 한글 가나다라 같은 거여. 그거를 이렇게 다니다가 왜정 때 1학년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다섯 살 먹은 사람이 1년 선배여. 다니다가 8.15광복절이 왔어요. 광복절이 와서 인제 다니니까 그때 난 다시 1학년. 한글을 배우니까 왜정 글은 필요 없잖아. 성도 이름을 써야하고 이름도 써야하고 그때는 우리말로 조선이제 조선. 조선이란 나라가 없어져부리구. 저놈들 식민지 살았제. 광복이 되었어요.
- (그리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6·25 오기 전에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 이렇게 있었단 말이여. 밤에는 빨치산들이 와서 밥술이나 두어 번 먹는 사람들한테 먹을 것을 내노라 이것이여. 안주고는 못배겨. 낮에는 경찰들이 와. 경찰들이 오고 이렇게 해서 내가 알기로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못난 양반은 아니여. 왜정 때 일본도 가고 중국까지 다녀오셨어. 그런데 하다 보니까 그때 소문이 어떻게 났냐면,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 못살게 할라고 소문을 어떻게 냈냐하면, 한국사람은 중국으로 가면 돈을 번다 하니까 중국으로 하얼
빈으로 간거에요. 가갔고 그때 인자 38선이 터지기 전에 와부렀어. 중국으로 돈 벌러 가셨다가 돈벌이가 안되니까 오셔부렀어. 안그랬으믄 이산가족 되어부렀제

- (어쩌다가 아버님이랑 어머님이랑 누님이랑 잃으셨어요?)
내가 어렸을 때 보니까, 저녁이믄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감자대 뜯고 된장싸서 다 보내야 해요. 그런 사람들한테 잘못 보이믄 죽어. 그래 인자 우리 친척이 있었어. 우리 아버지 외갓집 나로 해서는 진 외갓집사람인데 아버지한테 수하여. 낮에는 형님하고 찾아와. 경찰이니까. 밤에는 또 빨치산들이 와서 성가시게 하고. 우리 아버지도 참 시달렸다 생각을 하고 있거든. 낮에는 경찰, 밤에는 밤손님 빨치산한테 시달리고 살았는데 지금이면 나을 병인데 폐암에 걸려가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렇게 살다가 6·25가 터졌는데 인자 그때는 전쟁이라 내가 학교 5학년 때인디 우리집가 일꾼 데꼬 살았어.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어도 밥은 먹고 살았어. 그랬는데 아버지가 6·25전에 돌아가시고 또 유목자라고 알란가 몰라 어머님한테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나하고 남매간이 있었는데 6·25 닥치니까 오도 가도 못하고 살았어. 나는 다섯 식구를 잃고 아쉬운 게 뭐냐면, 어려서 인자 6·25가 터져버리니까 공산당이 내려와 가지고 집 앞 빨치산 그 사람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경찰들이 없으니. 살
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살다가 그 사람 말 듣고 살다가 이듬해 경찰이 수복을 했어. 내가 알기로 인천상륙작전인가. 그때는 피난을 다녀요. 안가면 공산당들이 반동이라고 죽여부러요. 별수 없이 따라 가야 해.
- (피난을 공산당을 따라다녔어요?)
응. 따로 갔으믄 죽어부렀제. 전쟁이 나면 될 수 있음은 따로따로 다녀야해.

- (어머님하고 다른 식구들은 같이 가고 어르신은 따로 가셨어요?)
그렇제. 피난 가서 경찰들 손에 죽은거여. 어머님, 할머님, 여동생하나 하루에 서이누님이랑 같이 갔어. 누님은 그때 인자 열여덟 살 먹었는데 경찰들이 데리고 나가고. (어머님, 할머님, 여동생은) 피난 가서 있다가 세분이 돌아가셨어. 나는 따로 갔으니까 살고 3일 만에 초상을 쳤어요. 동네분들이 묻어줬어. 유복자가 어머니는 총 맞아 죽고. 빠져나가 가지고 울고 있는거여. 동네사람이 데리고 있더라고. 얼마못가고 죽더라고 전쟁 통에 남동생하나도 죽고 다섯 식구가 죽고 장티푸스가 들어서 피난을 못가고 있고.

- (경찰한테 죽은 사람 많아요?)
하고 싶은 얘기는 왜 경찰들이나 정부를 원망하고 싶냐면, 자기들 갈 때는 밀고 내려오면 같이 갑시다 해야한디 밤에 도주해부렀으니까. 피난하다 죽여불고 정부가 원망스러워.

 

 

 

 

 

 

 

                                                                   암천마을 주민들

 

 

 

 

 


자료번호 / 06_12_08_MBN_20161119_KYG_0001
제보자(구술자) / 강양구(남, 79세, 암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