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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면

[유치면] 내가 군인으로 보이요? 반란군으로 보이요?

장흥문화원 2017. 10. 25. 09:48

 

 

 

내가 군인으로 보이요? 반란군으로 보이요?
▶ 구술자가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낮에는 군인, 저녁에는 반란군을 피해 집 근처 토굴에서 지내며 겨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로, 특별히 구술자의 아버지가 일촉즉발의 긴급한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며 전쟁 통에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지켜냈다는 것을 증언했다.

 

 

그러니까 6·25가 일어 났는디 막 피난을 가야한다고 그라드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어린것들을 어떻게 산으로 데꼬 다니냐”며 집에서 걱정을 하시더니 저기 꼬랑창에 산속에 가서 홀을 팠어요. 쪼까 큰 방만하게. 우게는 얼음나무 같은 것이 얽혀갖고 있고 옆에는 꼬랑물이 쫄쫄졸 내려간 데다. 물도 사용해야 되니까. 장소를 보셨는지 홀을 파갖고 네모반듯하게 반반하게 해놓고 잔디 띱사 그런 것을 폭삭하니 깔았어요. 거기서 숨으라고. 밥만 먹으믄 인자 밤에는 반란군이 괴롭히고 낮에는 순사가 와서 잡아 갈라고 하고 그란게 밥만 먹으믄 산으로 내빼지요. 그러믄 우리 어머니가 데리고 그 홀로 가요. 피난을 하고 급하믄 벤또에다가 옛날에 쇠도시락에다가 쌀을 불려갖고, 비니루도 없으니께, 가서 계곡물을 쪼금 떠다가. 밥도 묵으러 못내려오니까. 불도 연기가 나믄 순사가 잡으로 오니까 연기 안 나게 할라고 맹감나무를 아버지가 해놨다가 그놈 때갖고 밥을 해서 먹고 그렇게 피난을 했어요. 그랬는디 하루는 인자 쪼까 조용했던 갑디다 시국이. (아버지가) 어머님보다가 자기는 어린것들 데리고, 내동생은 다섯 살 아래고 저는 아홉 살이고 그란께 어린것들 데리고 여기서 숨으라고. 오빠하고 당신은 산으로 피난 간다고. 집터에가 담이 있는디 여기다가 담배를 걸쳐갖고 거기다 퇴비를 수북하게 쟁여. 쟁여갖고 저 안쪽으로 굴을 뚫었어. 그래갖고 우리를 피난을 거기로 시킬라고. 그래갖고 거기서 하루는 피난을 가서 하고 있는디 무사히 넘어갔어요. 또 그 다음날 쪼깐 조용한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애들 데리고 여가 있으라고 우리만 산에 갈꺼인게”해요. 거기 인자 굴속으로 들어가서 숨어 있는디 어머니가 담배가 피우고 싶다고 대통담배, 별나 늙지도 않았는디 담배가 피고 싶다 그랬어요. 담뱃대만 갖고 들어갔든가 불이 없다 부삭에 가서 담배 한나 태워온나 그러드라고요. 한번 태워도 드시더니 꺼져부렀다 다시 태워갖고 오니라 해 막 나가서 뛰어가서 뛰적뛰적해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디. 그전에 우리집에서 아버님 먼쪽 누님되는 양반이 붙여서 살았어. 우리는 아짐이라고 부른디 아짐이라는 양반이 제 이름을 부르면서 “영자야 큰일났다. 우리는 다 죽었다. 어서 이불보따리도 내리고. 불지른 것 같어. 민간인 쩌리 내려 가불고 반란군을 소탕할라고”해요. 근데 당신이 우리 집가 붙어있음시롱 손톱으로 목화 그래도 그 정신이 베놔서 옷 해 입을라고 우리 면실을 까서 이만이나 실겅 위에다 올려놨어. (아짐이) “우리 면 보따리도 내리고 느그 면 보따리도 내리고 해라. 엄니랑 어디로 갔냐!”고 외침시롱 울고 들어온단 말이요. 이라고 넘어다본께 이놈의 군인들이 우리 사립에서 저만치 떨어진 데서부터 고랑이 팍팍해갖고 시컴해갖고 바가지 쓰고 몰려든단 말이요. 그란께 불을 지를라고. 그래갖고 인제 난 오도가도 못하고 거가 서서 아짐이 시킨 말대로 이불 보따리도 내리고 면 보따리도 내리고. 잡아당겨 내렸제. 안태워야 쓴다고 그럼시롱. 군인아저씨들이 우리집으로 도달을 했어. 나를 보고는 집을 뚤레뚤레 합디다. 아버지가 소를 기르신께는 시누대라고 있어요. 마당 빗자루 두 개를 매서 그놈을 추켜들더니 “불 어디있냐? 불 어디있냐?”며 다그치드란 말이요. 안 갈쳐줘야 쓰겄다 했어. 틀림없이 불 지를거 같애서. 안갈쳐주고 싶은디 하도 다그친게 처음엔 불 없다고 하다가 “뭣으로 밥 해 묵었냐” 한께 부삭에 불 있다고 갈쳐줬어요. 그랬더니 신우대 빗질한 거 갖고 오더니 부삭에가 기다랗게 들어 거꾸로 들어 뺑돈게 덩그드만요. 친정 큰집언니가 여웠는디 검침을 왔어. 6·25가 나서 길이 꽉 막혀부렀어, 큰집언니하고 오빠하고 서이 갔다가 집에가 연기가 난께는 어느 정도 탄께는 사정없이 내려와겠다니까. “엄니, 엄니 언능 나오씨오” 한께는 그냥반도 벌벌벌벌 떠니라고 어찌할 줄도 모르고 동생도 놀래서 두근두근 냇가갓으로 쫓으고. 그래갖고 인자 불을 지르고 있는디 조금 있는게 사촌언니가 옴시로 “죄도 없는 우리 작은아버지 집에 불을 지르냐”며 우리 작은아버지 같은 양반 없는디 왜 불을 지르냐고. 조금만 나가 서 좋게 살자는 그말이제. 죄 있고 그래서 태운 것이 아니다고. 그걸 태우고. 눈이 그날 펑펑 발목까지 왔어. 울고 덜덜 떨고 있응께 군인아저씨 한나가 오더니 내 손을 꽉 잡고는 느그 아버지는 뭣하냐고 묻는디 암말도 안하고 있응께는 소 끌고 산으로 내빼부렀어요. 반란군은 아니라고 암호를 주고 받는 거 같았어. 내 귀가 얼마나 빨갰던고 그 하얀 장갑 찐 손으로 내 귀를 양쪽을 싸주더라고요. 추와서 안쓰러웠던갑이여. 지금은 까만 베우산 미군들이었든갑서. 좋은 우산 새 우산을 갖고 왔든가 나를 피어서 줌시롱 어디 쩌기 가서 의지를 하고 그라더라구요. 오빠가 데려다가 이불 보따리를 쩌만큼 논둑 언덕에다가 앉혀놓고 우산을 딱 펴주더라구요. 눈은 개렸는디 인자 어머니는 그냥 울고불고 막 난리를 치고 조금 있응께 어쩔 수 없이 장에 나가야되야요. 어머니는 쌀조까 먹고 살라고 옹고 동우에다가 쌀을 하나는 못이고 조금 담아서 이고 애기를 못업잖아요. 5살 동생은 못가요. 어린 것이 어떻게 내려갈 것이요. 근께 저보다 나한테 업으라해요. 업은다고 업은디 버선을 신었는디 눈이 오고 여까지 눈이 빠지니까 버선목이 내려가부러. 신 가까이 내려가부러. 발은 무겁제 눈은 오제 애기는 업고 내려가야제 죽어불겄습디다. 쪼금 가다 쉬고 쪼금 가다 쉬고 어머니랑 바꿔감서 업고가고 그래갖고 피난을 나가서 사는디 먹을 것이 어디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살던 집에 갔다가 먹어야 되아요. 어머니가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누구랑 누구랑 곡식가지러 간다고 했는갑디다. 어머니가 집에 와서 그 말을 하니까 우리 아버지가 암말도 안하고 들어보고 계셨어. 어머니가 “가서 좀 갖고 오믄 쓰겄는디 왜 아무 말도 안하냐”고 그란께 (아버지가) “가만히 있어. 지서를 습격하고 그럴 때여”해요. 가만히 있었는디 인자 석양에 해름참에 해가 너울너울 해. 조까 있응께 어머님한테 들어본께 간 사람 서이가 죽고 하나는 죄 없다고 빠져나오고 그랬다고. 근디, 담배를 팔아갖고 조끼에 돈이 있던 양반한테 이 돈이 어서 났냐고 반란군들이 군인들 정보 받고 연락책으로 왔다고 그런 소린가 둘이를 데꼬 가서 죽여부렀다하요. 한명은 내려오고. 그란께 아버지가 “보라고 내가 가만히 있으믄 가만히 있어야 쓴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디 한 끄니 두 끄니 굶는 건 괜찮하지만 나도 자식들 귀한 줄 알고 먹이고 싶고 그란디 못갔다”고 해요. 어머니가 “그랬소” 하고 맙디다. 근디 반찬거리가 없어. 그라믄 샘에 물 길러 가서 무를 한나 얻어갖고 왔어. 친정어미니가 그란께는 그놈을 나박나박 썰어갖고 지국을 탔어. 지국을 타서 밥을 먹어요. 밥을 오늘 아홉시에나 먹으믄 오후 세시에나 묵고 두 끄니만 묵고. 오매 보기도 아까운 자식들 세상에 내 힘으로 살믄 굶기든 안할껀디라고 늘 한탄을 해싸시더라고요. 그렇게 피난 함씨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몇 식구가 살고 남자는 남자들끼리 몇 식구가 살고 밥은 자기 식구하고 먹더라도. 하루저녁은 잠을 잘라고 있는디 우리는 모르고 있는디 반란군들이 저녁이믄 둑둑둑둑 소리나고. 우리 아버지가 길가에 문 앞에가 앉았고 둘이고 있고 남자가 서이가 잠을 잘 땐디 문을 툭 열더니 우리 아버님보다가 “내가 군인으로 보이요? 반란군으로 보이요?” 한께 아버지가 눈을 깜빡깜빡하믄서 “제가 눈이 좀 안좋습니다. 젊었을 때 담뱃진을 해갖고 못 알아 본다”고 했어요. 쉽게 말로 반란군으로 하믄 좋은디 군인으로 보인다고 해서 대번에 데꼬가서 죽여부렀잖아요. 초상이나고 난리가 나고. 그런 세월을 겪었어.

 

 

 

 

 


자료번호 / 06_12_08_MPN_20160712_KYJ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영자(여, 75세, 반월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