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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면

[부산면] 한국전쟁 중 지천리 민간인 학살사건

장흥문화원 2017. 11. 8. 10:55

 

 

 

한국전쟁 중 지천리 민간인 학살사건
▶ 1950~51년쯤 한국전쟁 와중에 당시 9세였던 구술자가 목격한 경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이다. 구술자는 지천리에 살았는데 어느 날 경찰과 학도병이 마을에 들어와 반란군 대장 1명과 주민 12명을 사살하고 집집마다 불을 지른 장면을 목격했다. 구술자는 반란군은 주민들을 죽이지 않았는데 경찰이 주민들을 죽였다고 기억했다.

 

 

지천리 526번지, 옛날에는 갑골이지. 내가 9살 때 그때가 9월 달이였어. 나락이 익어서 수확할 판이었어. 우리 집이 잘 살아갖고 반란군들 13명에게 밥을 해 줬어. 밥을 한참 먹고 있는디 경찰들이 뒷산 앞산 싹 다 포위를 해 부렀어. 밥을 묵은디, 내가 가만 보니까 내가 아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어. 고개를 자웃자웃 해 싸더라고. 앞산에서 총소리가 빵하고 하니 안 죽을려고 내빼. 나는 그때 애기라서 잘 몰라서 사장나무 아래 뒷짐 지고 자웃자웃 가보니 사람이 13명이 죽었는디 피가 감당을 못하겠드라고. 나는 째깐한 것이라서 순사들이 나한테는 관심도 없제. 걸리면 걸린 데로 쏴불드라고. 째깐한 동네에서 13명이 죽었어. 한 두 시간도 못 되야.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부렀제. 죄 있는 놈도 죽이고 죄 없는 놈도 쏴 부리고. 반란군들은 다 내 빼고 주민들이 다 죽어버렸제. 반란군 대장 1명하고 주민들 하고 해서 13명이 한꺼번에 죽어부렀어. 그란디 경찰관들이 전부 다 사람 죽였제 반란군들은 사람 안 죽였제. 주식이 조달이 안된께 주민들한테 밥은 해 달라고 했어. 그것 밖에 죄가 없어. 그때는 말판이라서 보림사 지역본부로 후퇴할 판이여. 그때 생각하면 몸서리증이 나부러. 그라고 인자 한 오후 3시나 4시 되니까 경찰들이 철수해 부니께 반란군들이 내려와서 “아마, 우리가 한발 늦었다”며 “저것들을 완전히 작살내불 것을 그랬다”며 거짓말을 하드라고. 경찰관들이 전부 다 가택수색을 했는디 쓸 만한 것이 있으면 다 주워 가 불고 우리 집은 운수가 있어갖고 우리 어머니가 모제기에 다 주워 모아 선반에 올려놨는디 우리집은 마침 안 들어 왔어. 만약 들어왔으면 싹 다 몰살시켜불제.
- (반란군들한테 밥을 해 준 흔적이 있으면요?)
잉. 우리집이 골목이 진께 무서워서 안 들어왔어. 그래갖고 끝을 내 불고 인자 불을 질러분디 학도병들하고 그때는 순사가 아니라 이행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와서 집집마다 불을 질러 부러. 여지없어. 경찰관들이 불을 질렀어. 반란군들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강진서장 부대 장흥서장 부대 하면 발발발 떨어부려. 여지없어. 전부 다 학도병학고 이행 부수레기들하고. 우리마을이 45호 정도 된디 싹 다 질러 부렀어. 그란디 그것도 신기하드만.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드라고. 좌측에 가담한 사람들인디. 그 와중에 산 사람이 있어. 아무 죄도 없는 주민들을 죽여버렸제. 45호 가구 사는 데서 13명이 죽었으면 그 마을이 쏘가 되어불제.
- (사람들이 죽은 장소는 어디에요?)
지천리여. 장흥땜 현장이여. 수몰은 안 되고 유원지로 만들어 놨어. 물문학관 아래여. 그때 생각하면 사지가 떨려 부려. 전부 다 경찰관들이 잘못한 것이여. 주민들은 안죽을랑께 밥 해 주라면 밥 해 줘야지. 반란군이고 순사들이고 와서 쏴 죽이면 나만 불쌍해 부러.
- (그때 죽었던 사람들 중에 반란군 대장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순수한 주민들이었다는 말씀이세요?)
잉. 최병일이 최병호… 못 시겠구만. 내가 다 안디.

- (시신 수습은 어떻게 했는지요?)
후손들이 있는 사람은 가져가고 글안한 사람은 그대로 있어.
- (무덤들을 볼 수 있나요?)
댐 공사하면서 파 내쳐부렀어. 어디로 날라 간지도 몰라. 그때는 말도 못하게 살벌해 갖고 말 한자리만 잘못하면 쏴 부러. 그라고 인자 좌익 손들 사람 있고 우익 손든 사람이 있어 그라거든. 양극화가 되어갖고 사람 죽애.

 

 

 

 

 

                                                   지천리 당산나무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0727_LDS_0001
제보자(구술자) / 임동성(남, 75세, 거동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