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동학농민혁명 석대들전투에서 숨진 조부님
▶ 동학농민혁명 당시 강진에 다녀온다고 조부님이 책을 들고 나가셨다. 하지만 석대들전투 패배 후 자울재에 수 100명의 농민군 시신이 있다고 해서 조모님이 찾으러 갔으나 찾을 수 없었다. 농민군들을 유지기를 씌워 불에 태워 죽였기 때문에 시신을 구분할 수 없었다.
나 19살 묵어서 조모님이 돌아가셨단 말이요. 그 죽산 안(安) 씬데 저 척산 앞에 열녀비, 열녀비 비석을 내가 세왔거든. 그 함머니 말에 의한다 하면은 음 책을 갖고 나가. 그래서 함머니가 “어디 가시냐”고 그라닌까, “강진 좀 다녀온다”고. 어 “언제 오시냐”고 그라니까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그라고 나가셨어. 그래갖고 석대전투에, 지금 우리가 생각컨데 장흥 석대전투에 참전해갖고 자올재에서 수 100명이 시체가 있다고 그래서. 조모님이 막둥이 시아재를 모시고, 어 나로 하면 작은댁이 조부님 되시는데 막둥이 시아재를, 증조부님이 삼형제를 낳았으니까 끝에 조부님을 말하는 거시여. 그 조부님을 모시고 사흘 동안을 시체 찾으러 갔는데 어떤 양반이 긴지를 몰라. 찾을 수가 없어. 머리에다가 짚으로 유지기를 씌워갖고 불에 태와서 분사로 해갖고 인자 돌아가셨는데, 시체를 못 찾아 부렀어. 어떤 양반이 긴지를 모르니까. 그래서 포기하고 그러고서 알고 있단 말이야.
- (그러면 그 조부님 묫은 어떻게 쓰셨어요.)
묫은 그 조부님 묫은, 저 여기 함머니가 나 19살 먹어서 돌아가셨으니까, 72세에 돌아가셨으니까. 그 함머니하고 허장으로, 가족 묘지에다가 합장으로 모셔져가지고 있지.
- (지금 우리 동학농민혁명에 조부님 기록이 돼 있죠.)
그라지. 그라지. 등록이 돼 있고. 정읍도 쓰윽 댕기고.
- (그 당시에 책을 들고 나가셨으면 왜 책을 들고 나가셨을까요.)
그러니까 알 수가 없어. 그라니까 함머니, 조모님 말에 의한다 하면은 아주 조부님이 날싸와 갖고 아주 영리하고 날쌉고(날쌔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보통 양반이 아니제. 그라니 동학에 가담했제. 그랑께 연락을 취하러 갔든가, 그것은 모르제. 그랑께 처가가 강진 부춘이니까 죽사(竹絲)를 허시니까. 처가에 간다고 그런 말도 안하면서 그냥 강진을 간다고 그라고 나가서 그 일로 돌아가셨다고.
자울재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1129_KSS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성수(남, 84세, 용산면 척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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