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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부산면

[부산면] 독우재와 난정회

장흥문화원 2017. 11. 8. 11:08

 

 

 

독우재와 난정회
▶ 향토문화재 독우재는 구술자의 고조 할아버지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지은 초당으로 형제들과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독우재를 중심으로 유림들 사이에 ‘난정회’라는 시유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독]자가 옥편에 보면 한 열댓 가지 뜻이 나와 있다. 도타울 [독]자인데 도타운 놈은 거짓이 없는 놈이고 성실한 놈이고 두터운 놈이고 그런 뜻이 담겨 있어. [우]자는 우애 [우]자여. 근데 이 초당을 우리 5대조 할아버지가 초당을 지으려고 생각을 했어. 근디 힘이 부쳤든가 초당을 못 짓고 87세에 돌아가셨어. 그 아들이 아버지가 초당을 못 짓고 간 한을 갖고 있어. 그래서 아들이 초당을 지었어. 우리 고조 할아버지가 형제가 3형제인데 초당을 요 자리가 아니라 이 우에다가 짓고 여그는 초당지기 초당 하인집이여. (나중에) 우리 할아버지가 요리 내리 지었지. 초당을 지어놓고 고조 아버지가 형제들을 (초당으로) 오라고 해. 그래서 3형제가 항시 초당에서 놀아. 시간만 있으면. 놀아도 초당에서 놀고 먹어도 초당에서 먹고. 그렇게 (고조할아버지가 형제들에게) “아버님은 돌아가셨어도 우리가 우애 있게 이렇게 살자”해서 ‘독우재’라고 했어.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우애가 돈독한 집안이여. 그런 조상의 얼을 받아가지고. 그것이 문집에 나와 있어. 그라고 초당을 지어 놓고 이 근방에 있는 학자들 다 오시라고 해.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어. ‘난정회’라는 모임을. 도연명의 시유회가 ‘난정’이여. 그란디 이 근방 선비들 유생들 전부 난정회를 조직해서 그 수가 20수가 된다고 했어. 문집에 나온 말이여. 그란디 내가 선조 할아버지 문집을 발간해야 돼. 못하고 있어. 그란디 내가 문집은 번역은 못하고 집이가 있는디 전남대 교수가 찾아왔어. 문집을 좀 주라고 해 못 준다고 했어. 하도 사정을 하길래 그라면 줄건께 보시고 다시 갖고 오라고 했어. 갖고 왔대. 서문하고 독우재서하고 번역해서 보냈어. 중요한디 몇 가지 번역해서 갖고 왔어. 또 이명이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있어. ‘동백정을 중심으로 한 시유회’란 제목으로 논문을 쓴디 자료 주라고 찾아왔더라고. 그 사람이 논문을 써갖고 한권 줬는데 우리 집 글들이 많이 나왔어. 그랑께 우리 할아버지가 거기 가서 많이 노시고 그란 대목 그런 것들이 동백정이 중심이 되었다는 그런 것을 내놓은 거여.

 

 

 

 

 

 

 

                                     독우재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0729_LTG_0003
제보자(구술자) / 이태균(남, 82세, 금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