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41

[관산읍] 공예태후 임씨

공예태후 임씨 ▶ 장흥이 장흥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유래에 관한 이야기. 고려 인종 때 태후에 봉해진 공예태후가 이곳 관산 당동마을 출신이라서 당시 영암군 소속 현이었던 장흥을 승격시켜 독립토록 했다는 이야기다. 공예태후는 의종의 황후일 뿐 아니라 의종, 명종, 신종 이렇게 세 왕의 어머니이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태어날 당시 꿨던 태몽 등에 관한 이야기다. 또 여장부로 무신정권 시대에 왕들을 지켜 왕위를 안정케 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공예태후 임씨는 고려 예종 4년에, 1109년에 관산읍 옥당리 당동마을에서 중서령 고려 때 중서령이라는 벼슬을 했던 임원우의 둘째딸로 태어났는데, 태후가 태어난 날 밤에 자기 외할아버지가 꿈을 뀌었어. 이위라는 분인데 외자야 이름이. 이위. 외할아버지가. 그 분이 꿈을 뀌니..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인동폭포

인동폭포 ▶ 장흥 관산읍 용전리 와룡마을 이야기다. 천관산 입로에 있는 인동폭포는 효험이 있어서, 백중날 그 물을 맞으면 땀띠가 없어지고 피부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었다. 그런데, 언젠가 나환자가 소문을 듣고 와서 물을 맞으니까 먹구름이 끼더니 벼락이 쳐서 바위로 된 홈통도 부서져 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효험이 없어져 버렸다고 전해 내려온다는 이야기다. 인동폭포. 그런데 그거는 발음이 그렇게 변해서 인동폭포가 되고, 원래 이름은 어인동 폭폰데, 그것이 어인동이 엔동으로 변해갖고 엔동물, 엔동골. 우리가 풀하러 엔동골로 가세. 어인동인데 그것이 엔동으로 변하고 발음이. 엔동이 인동으로 변하고. 그래갖고 인동폭포 이야긴데, 이 폭포는 관산읍 용전리 와룡마을 바로 그 천관..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대평마을 식은포

대평마을 식은포 ▶ 장흥 관산읍 삼산방조제가 있는 대평마을 간척지 식은포 이야기다. 그곳은 예전에 소득이 적은 바다였기 때문에 가난했었는데, 제방을 막아서 큰 들이 되었고, 그래서 옛 지명인 식은포가 의미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오래 전부터 그곳 바다를 막아 제방을 쌓고 농경지를 만드려고 했지만 최근에야 완공을 해서 큰 농경지가 되었는데, 이로 보아 옛날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갖고 지명을 지었다는 것이다. 식은포는 지금 삼산 방조제를 막어서 농경지가 된 포구를 식은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쉰게 또는 식은 포, 이렇게 여러 가지 발음으로 불렀어요. 그런데 왜 식은포 그러냐면 그건 소리나는대로 읽으니까 식은포고, 식은포 원 글자는 불어날 식(殖)자 은 은(銀)자 그래서 식은포라고 하는데, 여기서 식은포 지..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부안곡

부안곡 ▶ 장흥 관산읍 내동 어은마을에는 부안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곳에 최근 들어서 저수지가 들어섰다. 하여 그것은 예전에 지역 옛사람들이 선견지명으로 ‘기러기가 뜬다’는 이름을 지은 의도에 따라 그대로 저수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동 어은마을 옆에가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를 부안곡, 부안골, 그라고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내동1구 어은동에서 남쪽으로. 그런데 그 산꼴짜기에다가 으째서 뜰 부(浮)자 기러기 안(雁)자 써서 부안곡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해오던 중에, 60년대 70년대 자유당 시대 때 선거 때마다 저수지를 해준다. 공약사업으로 꼭 나오는 골짜기가 부안골이여. 그러니까 저수지가 되기는 될랑갑다. 그러니까 뜰 부자 기러기 안자지, 이름이. 이래 왔는데 어느..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장환도

장환도 ▶ 장흥 관산읍 장환도는 옛사람들이 이름을 지을 때 ‘꿰일 환’자를 써서 장환도로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육지로 연륙이 되어서 옛말이 사실로 증명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장관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틀린 것이다. 지금 그 섬은 또 주변의 작은 고추섬을 포함해 간척사업을 해서 어업과 농업을 겸하는 부자마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장환도란 마을이 있는데, 우리 관산의 유일한 유인도로써 상당히 큰 마을이었는데, 섬과 섬이 연결돼서 지금은 연륙이 돼 갖고 육지가 됐는데, 가만히 마을 이름을 풀이를 해놓고 보니까 연륙은 당연한 것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가운데 글자가 네모 두 개를 해 갖고 쭉 낀 글잔데, 그거이 꿰일 환잔데, 그래서 긴 장(長)자 해서 장환도라고 했는데, 옛날..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산서마을 쪽다리

산서마을 쪽다리 ▶ 관산읍 삼산 1구 산서마을에 있는 쪽다리 이야기. 바위 두 개로 놓아진 이것은 어느 힘 센 장사가 들쳐 메고 와서 놓았다고 하는데, 훗날 사람들이 그 쪽다리 사이를 끼어 다니면 이른바 초학이라고 하는 말라리아를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는 것이다.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한 6킬로 쯤 가면 삼산리 산서마을이 있는데, 산서마을 서쪽에 쪽다리가 있는데, 그 쪽다리는 긴 바위 두 개가 놓여져서 쪽다리라고 하는데, 그 쪽다리는 어떤 기운 센 장사가 그 바위를 양쪽 어깨에다가 들쳐 메고 와서 놓았다, 그런 다리로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훗날 그 쪽다리 사이를 끼어 다니면 하루걸이, 일명 초학이라고 하고, 말레리아 증상인데, 하루걸이가 떨어진다고 하는 그런 전설의 다리가 쪽다리다. 산서마을 ..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노승봉

노승봉 ▶ 장흥 용산 상발리와 관산 하발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를 노승봉이라 한다. 그 산을 노승봉이라 한 까닭은 예전에 한 스님이 왜구가 쳐들어오니까 사람들에게 산으로 몸을 피하게 하고, 자신만 혼자 남아서 왜구와 장렬히 싸우다가 주민들을 위해 전사했기 때문에 이를 기려 노승봉이라 했다는 이야기다. 노승봉은 장흥 호남정맥 따라서 장흥 제암산에서 사자산 억불산을 지나서 구룡산으로, 구룡산맥을 따라서 차일봉으로, 해서 떨어진 곳이 노승봉이다. 그라믄 그 노승봉은 용산면 상발리하고 경계를 하고 있다. 관산 하발리하고 용산 상발리하고 옛날에는 남하면이었다. 그래서 거기에 경계 산이 노승봉이다. 그런데 왜 노승봉이란 이름이 생겼느냐? 옛날에 왜구가 이곳에 침입을 해올 때 이것을 미리 안 노승이 마을에 와서 “빨리..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천관산 갈대봉

천관산 갈대봉 ▶ 천관산 정상쪽에서 대덕읍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갈대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엔 물이 솟는 웅덩이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바닷조개 껍질이 있고, 바닷물이 빠지면 그 물도 줄어들고, 바닷물이 들면 그 물도 늘어난다. 해서 사람들은 그 물이 땅 밑으로 바다와 통했다고 믿어왔다는 이야기다. 천관산 정상에서 대덕 쪽으로 쪼끔 내려가면, 바위들이 많이 있는, 그 사이에 웅덩이가 있는데, 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바닷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거기서 자라. 천관산 꼭대기에서. 억새가 아니고, 바닷가에서 자라는 갈대가 거기서 자란다. 그런데 또 조개껍질도 있고, 해조류 잔재도 거기서 발견이 되고, 그랬다. 그러면은 거기까지도 바다였는가? 여기가 쪼끔 지대가 얖으고 그렁께 그랬는가? 그런데,..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신동마을 진사수

신동마을 진사수 ▶ 어느 부부가 관산읍 신동에 들어와서 살았는데, 남편이 어느 날 바다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죽어버렸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가 잠을 자는데 꿈에 도사가 나타나서 남편이 고기잡이를 하다가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하고 자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배게 되어 낳았다. 그래서 이름을 신동이라 불렀는데,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진사가 되었다. 그후로 그래서 마을이름을 신동이라 하고, 그 마을 앞에 있는 소나무를 진사수라 해서 동네에서는 최근까지 제를 지내왔다는 이야기다. 관산읍 동두마을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때 치소가 방촌일 때, 동쪽의 마을이라 해서 동두머리라, 동두라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신동이 동둔데, 어떤 젊은 부부가 동두머리에 와서 입촌해서 와서 살아. 고기잡이..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관산에는 메기가 없다

관산에는 메기가 없다 ▶ 관산에는 메기가 없다. 그 이유는 예전에 관산 사는 어느 선비가 길을 가다가 물을 먹으려고 하니 메기가 흙탕물을 일으켜서, 그 물을 못 먹게 된 선비가 화가 나서 그 메기를 집어 들어 솔치재 너머로 던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뒤로 관산에는 메기가 없다가 극히 최근에야 메기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옛날에 선비가 길을 가다가 목이 말르니까 고래에서 물을 먹을려고. 고래라는 것은 어덕 밑에서 물이 나온 그런 데서 맑은 물을 먹을려고 하는데, 뭣이 착~~ 해갖고 꾸정물을 일으켜부러. 물을 먹을라 그라는데. 이라고 보니까 수염이 달렸거든.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 어른이 물 먹을라한디 잉… 꾸정물을 일으킨디. 겸하여 수염까지 달렸거든. 괘씸해 네 이 자석, 그라고는 잡아갖고 ..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개구리 없는 방죽

개구리 없는 방죽 ▶ 관산읍 방촌에 있는 존재 위백규 선생의 집 앞 연못에는 개구리가 없다. 존재 선생이 학문을 연마할 당시 개구리가 울어서 시끄러워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부적을 써서 연못에 넣었고, 그랬더니 개구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구리 없는 ‘방죽’ 이야기 할라고 그래. 개구리 없는 방죽은 방촌리 존재 위백규 선생 서실 앞에가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방죽은 개구리가 없다고 그래요. 다른 방죽은 개구리들이 막 울어제낀디, 그 방죽만은 개구리가 없는 이유는 뭐였느냐 그라면은, 존재 위백규 선생은 호남 3대 실학자의 한 분이신데, 3대 실학자를 어떻게 논하냐 하면 화순의 규남 하백원 선생하고, 순창의 이재 황윤석, 그라고 존재 위백규 선생이라고 호남 3대 실학자라고 이렇게들 말을 해요. 그런..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당동 각시소

당동 각시소 ▶ 관산 당동마을에 있는 각시소 이야기. 고려 17대 황후 공예태후는 임원후의 둘째딸이었다. 그런데 첫째딸이 어느 날 왕비가 될 상서로운 꿈을 꿨다. 그러자 동생이 그 꿈을 자기에게 팔라고 해서 팔았다. 그 후 동생은 왕비가 되었다. 그래서 첫째딸은 자기가 왕비가 될 것인데, 꿈을 팔아버려서 왕비가 못되었다고 한탄하며 못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당동 각시소라는 이야기다. 각시소 얘긴데, 당동마을에 앞내에 있는 소 이름이 각시소인디, 지금은 다 메꿔져갖고 냇갓인데 옛날에가 소가 있었던 것 같애. 그 얘깁니다. 공예태후 임씨에게는 (고려)17대 왕후가 공예태훈데, 그 언니가 한 분 계셨어요. 두 형제였는데, 하루는 언니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꿈을 꿨다고 하면서 꿈 얘기를 자랑스럽게 ..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각시바위 이야기

각시바위 이야기 ▶ 관산 부평마을에 있는 각시바위에 얽힌 이야기. 옛날 어느 각시가 장엘 갔다 오는데 자꾸 치한이 뒤를 쫓아왔다. 하여 각시가 자신의 젖을 떼어 던졌다. 그래도 따라오니까 수건을 벗어 던져버리고, 장에서 사갖고 오던 요강까지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부평마을에는 각시바위, 수건바위, 요강새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강진 넘어 가는 부평리 그 앞산에 큰 바위가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 각시바위에 얽힌 전설인데, 그 오도치를 장흥 장을 보고, 인자 용산으로 해서, 오도치를 해서, 부평 집을 오기 위해서, 오는데 뒤에서 치한이 쫓아와. 그러니까 겁이 나서 젖을 띠어서 땡겨 부러. 자기 젖을. 그러면 안 올 꺼이다, 그라고… 그래도 쫓아오거든, 젖을 띠어 던졌어도. 그랑께 머리에 쓰고 온 ..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산신령이 허락한 묏자리

산신령이 허락한 묏자리 ▶ 관산 당동마을 사립단 자리에 묘를 쓴 백기호씨라는 분의 실제 이야기. 백씨는 사립단 자리가 명당임을 알고 98일간이나 지극정성을 들여 산신께 그 자리에 선조 묘를 쓰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니까 산인이 귀찮아서 지팡이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귀찮으니 너 알아서 해라고 했다. 그러자 백씨는 선조 묘를 그곳에 쓰고 그 곁에 사립단을 마련해줬다. 그런데 백씨는 나중에 산신령이 지팡이로 찌른 그 옆구리가 아파서 백방으로 고치려고 했으나 고치지 못하고 이내 죽었다는 이야기. 당동마을 앞에 당례골에 궁한이라고 있어. 궁한에 사립단이 있는데, 마을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 제를 올리는 신당이여. 그란디 이곳이 명당인 것을 아는 그 마을에 수원 백씨 백기호라는 분이 신당 자리에다가 선친의 묘를 거..

관산읍 2017.09.15

[관산읍] 도깨비와 씨름한 힘 센 아재

도깨비와 씨름한 힘 센 아재 ▶ 동네에 힘 센 아재가 있었다. 그 아재는 아침 일찍 가서 풀을 한 짐 해오기도 했는데, 어느 때인가는 날이 밝아 집에 와서 보니 낫이 아니라 호미로 풀을 한 짐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힘이 센 분이었다. 그분이 독배기란 곳에서 도깨비를 만나 그가 씨름을 하자고 하니 소나무에 그를 단단히 묶어 놨다. 그런데 날이 밝아 아침에 가서 보니 도깨비가 아니라 빗자루 몽둥이였다는 이야기다. 우리 동네 그 신, 새 신 집안 아재가 한 분 계신데, 그분은 옛날에는 새벽에 나가서 풀을 한 짐을 하든지 나무 한 짐을 해. 땔감을. 옛날에는 다. 그런데 그분은 얼마나 일찍 가서 풀을 한 짐 해가지고 집에 와서 본께는 호맹이여, 낫이 아니고. 호맹이로 풀을 한 짐 뜯어분 거야. 기운이 ..

관산읍 2017.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