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14 50

[장흥읍] 고려 때 장원급제한 위씨 삼형제가 공부해서 장원봉(壯元峯)

고려 때 장원급제한 위씨 삼형제가 공부해서 장원봉(壯元峯) ▶ 고려 때 위원개 등 삼형제가 장원봉 밑에서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했다 해서 장원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지금도 형제들이 먹었던 통샘 물이 흐른다. 듣는 얘기로는 이 고려 때 위원개 씨 그분께서, 관산 위 씨잖애, 장흥에는. 근데 그 삼형제 분이 쩌기서 장원봉 밑에서. 그때는 인제 고려 때는 장원봉이라 했는지 모르지만은 급제 장원급제를 했다 해서 장원봉이라 한 거여. 위원개라는 분이 장원급제를 했어. 장원급제를 해가꼬 인제 그분이 인제 오늘 인제 그 분이 중간에 그 스님이 됐던가 봐요. 스님이 중이 되어서 인자 송광사에서 스님이 됐어. 그래가지고 송광사에 십육 국사가 났잖아요. 여섯 번째 국사가 원감이라는 호를 받아가지고 나라에서 원감. 원감국사라..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 한국전쟁 인공시절에는 날마다 동네에 모여 인민군 노래를 불렀다. 형님 세 분이 모두 경찰, 군인, 소방대원이라 주목을 받아 힘들었다. 소방대원 형님은 해창 곡식창고를 지키다가 산사람들에게 잡혔는데 모령 사는 산사람 친구가 도망가게 배려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다시는 전쟁은 안 일어나야 한다. 전부 모였거든 동네에. 오락 하먼 안 올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모여서 그 인민군 노래 잉 “야~ 뭐~ 양코배기” 인제 옛날 그런 다 잊어부렀는디. 인자 저녁마다 그놈 했거든.그라고 인제 각 부락 연락을 할 수가 없은께 연락병을 한 부락에, 연락을 이 부락 여기는 이 부락. 연락을 거그까지 조직을 했어. 그 놈들 유명 안하다고, 조직 그거 한 것은.그래갖고 하고 인..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세운 남근석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세운 남근석 ▶ 마을에서 남자들이 일찍 죽으니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마을 앞에 남근석을 세웠다. 거 뭐입니까. 거 남자 이[두 손을 둥그렇게 만들며] 세와 갖고, 여자들은 오래 사는데 남자들은 일찍 죽는다 해갖고 그걸 세왔던 적이 있어요. 남근석을 인자. 그런데 중간에 경지정리로 없어져 불고 또 대리로 한나 마을에서 세웠어요. 그랑께 그 사인바우가 여성바우라 해갖고. 그러면 뭐냐면 여자들은 오래 산디 어째 남자들은 일찍 죽냐, 이래갖고 그런 유래로 한 적이 있습니다.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1205_AOH_0002 제보자(구술자) / 안옥환(남, 84세, 건산 1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마을로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150~200년 된 노송들

마을로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150~200년 된 노송들 ▶ 예전 마을 앞에는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15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서있어 경치가 좋았다. 하지만 도로를 확장하면서 모두 베어버려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마을에는 또 서풍이 있어갖고 바람이 시어요. 요새는 집이 있지만 옛날에는 집이 없어갖고 그 앞에다가 소나무를 심어갖고, 한 지금부터 70년 전까지도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요. 요 앞의 마을에가 도로가로 해갖고. 그것은 전에부터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소나무란 것이 한 보통 150년, 200년 되지 않엤냐. 그라고 전부 도롯가에가 있었어요. 그 빤듯한 놈, 쑤욱 꼬부라진 놈, 모도 자빠진 놈 그러코롬 해서 있었어. 상당히 경치가 좋았었는디 근래 와서는 기양 모두 비어불고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서산대사가 본 터, 건산

서산대사가 본 터, 건산 ▶ 어렸을 적 집안에 사랑채가 있어 여러 가객들이 시조모임도 하고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산대사가 건산에 사람이 살터가 있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뭐 듣는 얘깁니다. 그란디 우리집이가 옛날부텀 그 사랑채가 있어 갖고 가객들이랄지 모도 이 그 유명한 분들 뭔 산서(算書) 공부시 시조 시모임이 있어 갖고 아조 많이 모였습니다. 그때 내 어릴 적에 들어본께 서산대사가 아까 왔을 때 요 우그로 올라갔드니 딱 보고는 용간대야라고 그랬습니다. “용이 큰 마을을 보고 쩌그 대야를 보고 있다.” 그래갖고 여가 자리가 터가 있다, 그런 얘기를 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산 1구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1205_AOH_0001 제보자(구술자) / 안옥환(남, 84세, 건산 1구)

장흥읍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