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20 17

[용산면] 혈을 자르자 벌 한 쌍이 피를 흘리며 날아가버려 몰락한 벌국재

혈을 자르자 벌 한 쌍이 피를 흘리며 날아가버려 몰락한 벌국재 ▶ 벌국재에는 힘이 센 진원 박씨들이 살았다. 하지만 인색하여 베풀 줄을 몰랐다. 하루는 동냥 온 사람이 괘씸하게 생각하여 벌국재를 자르면 더 잘살게 될 거라고 권유했다. 벌국재를 자르자 벌 한 쌍이 피를 흘리며 날아가버렸는데 그 뒤로 마을이 몰락했다. 어째 거그 살다가 잘 살다가 이러께 뭐시냐 분산이 되야브렀냐 하면은, 나 어른들 말 듣기로는. 그때 인자 그 바랑을 짊어지고 동냥을 하러 댕긴 사람들이 있던 모양이여, 벌국재에가. 간디 하루는 그 냥반이 와서 동냥을 잔 달라고 그랑께 인자 돌아 댕겼던 모냥이야. 그랑께 아 멫 집이 간께 약간 안 좋게해. “그라믄 당신들 더 잘살게 해 줄테니까 내 말 한번 들을라냐고.” 그 당시는 심도 있고 하..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일본 유학 가서 유도를 배워, 가르친 일본 선생도 제압한 문병곤

일본 유학 가서 유도를 배워, 가르친 일본 선생도 제압한 문병곤 ▶ 문병곤의 아버지도 힘이 장사였다. 이를 물려받은 문병곤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 유도를 배웠는데, 자신을 가르친 일본인 선생도 제압할 정도였다. 해방공간에서 활동을 하다 행방불명되었다. 원래 문병곤씨 그 냥반 아버지가 원래 장사였어. 뭐 아는 것도 없고 뭐 힘이 어떻게 장사던지 뭐 짐을 지고 가믄, 이 지게 통발이 딱 어디 걸리믄 똑 떨어져 나가브러도 이 그란지 저란지 모르고 짐을 그라고 지고 다니고 힘이 그렇게 씨었다, 그래. 거그서 인자 문병곤이가 거그서 태어났어. 아 인자 일제강점기에 그 뱅곤이가 인자 사회주의자로 활동을 했다고 그래요, 말 듣기로는. 또 그래가지고 인자 일본 사회주의 하다가 일본으..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교도소가 들어선 도둑막등

교도소가 들어선 도둑막등 ▶ 지금 교도소가 들어선 도둑막등에는 옛날에 큰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하도 도둑이 들끓어 사람이 살 수가 없어 마을이 사라져버렸다. 마을이 있을 만큼 잘 생긴 터다. 에 어른들한테 말 듣기로는 원래가 교도소 자리가 원래 큰 부락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러닌까 우리 부락보담 오히려 거가 더 큰 부락이 거가. 보기에도 우리가 흙을 파믄 꺼마니 그런 흙이 나오고. 거가 내 땅이 한 삼 천 평 이상이 있습니다만은 영락없이 사람이 산, 밭을 파 보믄 흔적이 그런 흔적 같어. 거기서 그렇게 살었는데 옛날에는 하도 거 도둑이 심해 도둑이. 그라믄 거기서 인자 도둑놈들이 늘 하도 그 많이, 그 죽고살고 해 논 것을 다 모도 털어가고 하니까. 인자 우리 부락하고 서로 연락이 되야가지고 서로 머시..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부용사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부용사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 부용사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대찰로 나와 있다. 아마도 지금의 용산면사무소 자리가 부용사의 입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부용사로 피신 온 수많은 농민군을 죽이면서 부용사도 불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부용산 계곡으로 3개월 동안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여기 제가 알기로는 문헌에는 그렇게 나와있더라구요.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정확하게 기록이 있어요. 여기가 고려시대 대찰로 나와있더라고. 그냥 조그만 절이 아니고 암자가 아니고, 절 입구가 면사무소 있는데 거기로 알고 있거든요. 제가 외국에서 있을 때 한 17년 전인가 차를 여러 대를 빌려가꼬 한바퀴 돌았는데, 면사무소 있는데 대탑이 세 개가 있는 걸로 내가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탑이..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처녀귀신 여섯 명을 만난 일곱 총각들

처녀귀신 여섯 명을 만난 일곱 총각들 ▶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노두를 건너던 일곱 총각들 앞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처녀귀신 여섯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가 안 맞는지 처녀귀신들이 그냥 가버렸다. 어 또 거 그것은 저희 형님 이야긴데 도깨비들이 이렇게 다리를 건너가다가. 지금도 이야기 해주시는데 우리 형님이 냇가 냇가를 건너가시는데, 밤에 열두시 에 옛날에 가설극장이라고 있자나요. 영화를 보고 친구들하고 친구 여섯 명하고 인자 열두시 너머서 냇가를 건너갔는데. 아 이쪽에서 도깨비 거 귀신들이 여섯 명인가 일곱 명 오드라요, 불이. 불이 하나가 딱 내려오드만, 다리를 건너가고 노두 노두 돌다리를 건너가고 있는데 중간에 가고 있는데 딱 내려와가지고는. 딱 보니까 멀리서는 불이 하나였는데 와서 보니까 불이 여..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나물 뜯고 약초 캐고 나무하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린 부용산

나물 뜯고 약초 캐고 나무하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린 부용산 ▶ 어머니와 보리밥 덩어리 싸서 나물 뜯고 나무하러 부용산에 다녔다. 어머니는 약초 캐면 약초이야기, 나물 뜯으면 그 나물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때는 모두가 아궁이에 불을 때던 시절이라 부용산이 거의 나무가 없을 정도로 헐벗었다. 이쪽은 산이 가깝고 저기 접정은 산이 없기 때문에 이산을 인자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다녔고. 풀도 하러 다녔고 또 그 나물 뜯고. 그라고 인자 어떠게 보믄 이산이 부용산이 어머니하고 같이 인자 워낙 생활을 많이 했고. 머락하까요, 삶의 터전이라 봐야제. 나무도 하고 나물도 뜯고. 삽주라고 창출, 또 머 도라지 더덕 또 머 참나물, 참나물 유명했고 뭐 그런 종류죠. 인자 옛날에 업시산께 시장에따 팔고, 먹기도 하겄지만 ..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오두재 성황당 돌무덤과 어머니

오두재 성황당 돌무덤과 어머니 ▶ 부용산 오두재 넘어가는데 성황당이 있었다. 어머니는 나물 장사 다니면서 돌을 던져놓고는 했는데 큰 돌무덤이 되었다. 성황당이라고 있거든요, 어머님이. 재에 가먼 서너 군데 있어요, 이 부용산에가. 오두재라고 저 재 너머가는 데 있는데.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어머니 장에 가실 때 나물 장사 다니면서, 거깃다가 거 돌을 꼭 한두 개씩 던져놓고 간대요. 그 날 거 재수가 운수가 봐주라고, 그렇게 빌고 가는 거죠. 오면 가면서. 근디 잔 놀랬어요. 어머니가 일부러 옛날부터 이렇게 쌓아논 것이 아니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 두 개씩 모아 논 것들이 큰 돌무덤이 됐다, 그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어머니도 갔다 오먼 솔까지 끄너다 놓고 돌 놓고, 내가 그걸 봤거든요. 자..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들길은 신발, 산길은 맨발로 가는 대덕장 나물장사

들길은 신발, 산길은 맨발로 가는 대덕장 나물장사 ▶ 어머니는 친구와 함께 삼사십 리 대덕장으로 큰 산을 두 개 넘으며 나물장사를 하러 걸어 다녔다. 어머니는 신발을 아끼려고 남이 안 보는 산길에서는 맨발로 남이 보는 들길에서는 신고 걸어 다녔다. 네 걸어 다니고, 어머니 또 그런 이야기했어요. 우리 마을에서 두 분이, 어머니 친구하고 같이 나물 장사 다녔는데, 삼십 리 길이죠 대덕까지. 삼사십 리 길인데 들을 지나갈 때는 신 신고, 산을 갈 때는 맨발로 가셨다는 거에요, 맨발로. 신발이 달을까봐. 신발 아낄려고. 근께 들에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때는 넘보니까 어려우니까 신발 신고, 산에 가실 때는 누가 본 사람이 없고 산길을 갈 때는. 이 산을[부용산을 가리키며] 두 개 넘죠. 그라고 대덕 가는데. 들..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왜정 때 호식(虎食) 당한 시신을 이장한 할아버지

왜정 때 호식(虎食) 당한 시신을 이장한 할아버지 ▶ 왜정 때 서당 대숲 뒤에서 호랑이에게 한 사람이 물려갔다. 아주 깊은 산골창에 물어다 놔서 그 자리에다 묘를 썼다고 한다. 해방 후 어느 시기에 이장을 하려고 파묘를 했더니 뼈는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운주저수지 아래로 이장을 했다. 옛날에 여가 호랭이가 살뜩에는 이 건네[개울 건너 앞마을을 가리키며] 마을에서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밤에 잠자다가 호랑이 손에 물려가꼬. 여가[손목을 만지며] 숭터가 있어. 그 냥반은 같이 살다가 돌아가셨제. 그라고 또 옛날에 여가 서당 했을 적에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밤이먼 초저녁에 이렇게 운동 하니라고 동네를 이렇게 돌잖아요. 학생들이, 서당 학생들이. 그러다가 이 건네 여 저저 저 대샆 뒤에서 호식해 갔어요, 한 분...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부용산의 용샘과 고동바위

부용산의 용샘과 고동바위 ▶ 부용산은 용산면의 진산(鎭山)으로 수많은 아픔과 전설을 지니고 있다. 용시암(용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서 거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국난이 있거나 큰 재해가 있을 때 큰 고동소리로 우는 고동바위가 있다. 진짜로 저 용샘이라는 곳은 특이한 곳이여. 그 저 가뭄이 들며는 거 기우제를 지냅니다. 부용산 면민들이. 그라면 거기 가서 기우제를 지내요. 개를 잡아가꼬 올라가서 거그다 피를 뿌리고 고사를 지낸디. 거기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쩌어[부용산을 가리키며] 바위 우게쯤이에요. 정상하고 얼마 차이 아니에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거기는 물이 나와. 산꼭대긴데. 신기하잖습니까. 거 나무가 있다거나. 그래서 그것도 그런 것도 하나의 용산면에서 그걸 사화 식으로..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 박학 대감은 축지법을 쓰고 천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화순 드들강에서 훈장을 하는데, 제지기가 성실한데 가난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제지기에게 드들강에 나가면 세 상인이 지나갈텐데 세 번째 상인을 꽉 붙잡으라고 했다. 박학 대감 말을 따르니 세 번 째 상인이 돈을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내시는 성기를 못 쓰게 맨드라불거든. 궁녀들 건든다고. 그래서 고자대감이다, 그래. 내시를 인자 거시기를 못 쓰게, 성기를 못 쓰게 고자를 맨들아분다 하든마, 일부러. 고자, 박고자 대감이라고 쩌어 우리 마을에서 나왔어. 박학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축지법을 했던가봐요. 여 저가 저 수풀 있는데 나무 있는 데가 침간정인데, 침간정. 정자가 있었는데. 우리 저 백 고조께서 여기를 인자..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수백 년 이어온 마을 당산제

수백 년 이어온 마을 당산제 ▶ 운주마을에서는 수백 년 동안 당산제를 지내왔다. 정월이면 지금도 지내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온 별신제 계책이 있어 누가 언제 헌관, 축관을 했는지 다 기록되어 있다. - (여기서 당산제를 드린다면서요.) 누백 년 돼. 축문에 보며는 우리 할아버지 때도 누백 년, 우리 아부지도 누백 년 하니께 수백 년 되었쥬, 되었긴. - (지금도 지내요.) 그러문요. 지금도 음식 숙정하는 가정에서는 깨끗한 사람을 골라요. 마을에서, 마을전체에서 깨끗한, 복도 안 입고, 아 부모 복, 복도 안 입고. 애, 어린애 임신한 여자도 안 되고, 홀로 사는 사람도 안 되고. 남녀 해로한 사람 깨끗한 집이서 해. 그래 찬물에다 일주일을 기도하지요. 겨울에 추운디, 정월이니까 춥잖아요..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서 죽은 사람들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서 죽은 사람들 ▶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는 좌익들이 많이 숨어살았다. 경찰에게 수많은 좌익들이 산속에서 마을 앞에서 총 맞아 죽었다. 전쟁 이후 그 깊은 골짜기에 가면 좌익들이 마을에서 끌고 가 잡아먹었던 소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여기 저 아까 저 얼음바위골.[부용산을 가리키며] 그때 절터에서 숨어가꼬 반란군들이 숨어가꼬 살았는데. 물 있는디 살거든 물 없는 데서는 못살잖아요. 거 살다가, 어산 거 김상호 알제.[옆 사람을 가리키며] 김상호씨가 잡으러 가다 총을 뺏겨부럿써. 그래가꼬 혼났네. 안 주글만치로 얻어마잔네. 주것네, 그래가꼬 골뱅 들었네, 그 냥반. 총을 잊어부렀서. 그러믄 그 하난 덤풀 다 뒤지고 있는디 내빼부렀제, 반란군들이. 이경으로 제대했거든 이경으로. 거 주글만치..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 부용산은 물이 좋다. 전설 같은 바위도 많고 석굴도 있다. 동학란, 왜정, 해방, 해방후 좌우익 한국전쟁 등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고동바위가 울고. 사람들이 부용산에 깃들어 피신하고 잡혀 와서 많이 죽었다. 하지만 당산제를 정성스럽게 지낸 덕분인지 운주마을사람은 한국전쟁에서도 죽은 사람이 없다. 참 물이 좋아요. 이분은 봤죠. 거기 올라가면 물맛이 좋아요, 좋죠. 참 좋아. 물 먹기가 힘들어. 거꾸로 서야 돼. 떠 묵든 하면 좋은데. 야픈데도 큰 돌이 가라막아가지고 좁고 좁고 좁아. 안 말라 그래도. 큰 석간수에 나온디 그 일상一相(으뜸)이 물이여. 참으로 명천이야. 그야말로 용시암, 용천, 허허허허 용천. 참 좋아. - (여기 고동바위라고도 있다며요.) 고동바위..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남포 소등섬 당할머니

남포 소등섬 당할머니 ▶ 꿈에 나타난 당할머니가 당신을 잘 모시면 마을에 안녕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여 500여 년 전부터 마을에서는 당제를 소등섬에서 모시고 있다. 지금은 소등섬에 당할머니 상까지 세우고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를 모신다. 그때는 지금 그 당제를 모신 매년 정월 보름날 당제를 모셔요. 그럼 그 당제 모시기 십오일 전부터서 이 금줄이라고 부락에 들어오는 길 여기따가 줄을 쳐가지고, 줄을 치고 흙을 깔고 해서 여기는 들오지 마시오, 라는 표시를 했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십오일 전부터서 준비를 하고 또 인자 당제를 모신 제주는 그때부터서 출입을 금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조심을 했었어요. 금했어요. 모든 궂은일에 대해서는 일체 참여 할 수가 없었고 또 궂은일을 당한 사람도 그때부터서는 여기를 들오지..

용산면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