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13 27

[장흥읍]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건산모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건산모시 ▶ 한 40년 전까지도 건산에서 모시를 삼아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큰어머니와 증조할머니는 건산 모시로 1등을 해 송아지를 타기도 했다. 지금 장흥고 일대가 모시밭이었으며 낮에는 논일을 하고 밤이면 아낙들이 모시를 삼았다. 저의 큰 어머니나 종조할머니가 건산 모시를 해서 1등을 나갖고 송아지 한 마리썩 탄 그 유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산 모시라는 것은 아조 옛날부텀 알아주는 모시입니다. 자세한 것은 인자 구두로 들었습니다마는 어디로 가더라도, 요새 뭐 한산이니 뭐 있지마는 건산 모시를 더 알아준 때가 있었습니다. - (그러면 그 당시에 건산에 모시밭이 많았나요.) 고등학교가 전부 모시밭이었어요. 그라고 모시 잎사구를 갖고 우리는 벌써 잉 쑥떡 같은 것을 해묵었는디, 그것이 뭔..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아이를 갖게 하는 샘바위와 남근석, 그리고 미륵불

아이를 갖게 하는 샘바위와 남근석, 그리고 미륵불 ▶ 설암산에는 물이 떨어지는 샘바위와 남근석이 있다. 옛날부터 아이를 갖으려는 부녀자들이 그 물을 먹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샘바위 안쪽에는 미륵불이 있는데 아마도 조그만 암자가 있었던 자리인 것 같다. 이 산 자체는 설암산(雪岩山)이라고 이렇게 해요. 눈 [설]짜에 바위 [암]짜 써서 설암산이라고 하고. 이 주위에서는 샘바위라고 이렇게 알려져 있어갖고. 옛날엔 실질적으로 약간 웅진 바위 속에서 샘이, 물이 많이 떨어져서 그 바위가 여러 사람들이 그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먹고 아이도 갖고. 뭐 이랬대는 얘기가 많어가꼬 사람들이 기도처로, 여기 기도를 하러 많이 찾았었어요. 그리고 또 여기 보시다시피 앞에 이렇게 남근석 바위가 하나 있거든요. 툭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소고기 한두 근 들고 딸집에 오다가 도깨비에게 홀린 친정어머니

소고기 한두 근 들고 딸집에 오다가 도깨비에게 홀린 친정어머니 ▶ 친정어머니가 시집 간 딸집에 소고기를 들고 오다가 도깨비에 홀려 밤새 홈거리와 물레방앗간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동틀 무렵에 딸집에 들어왔다. 도깨비불이 사람한테서 난다는데 한국전쟁 때 마을 앞 강변에 사람들을 사살해서 방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 그 마을의 앞 쪽 전경이 이 농지경지 정리가 되기 이전에는 쩌쪽으로 시장을 가는 길로 이렇게 길을 가는 데에 거 홈, 홈거리가 있고. 또 이쪽에 사인정 쪽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저기 홈거리에서 그 도깨비가 자주 났다고 그래요. 그랬는데 저도 그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째 형님의 장모되신 분이 밤에, 그때는 인제 차편이 아닌 다 보행으로 다녔지요. 그 딸집을 오시느라고 그 소고기를 한두..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스님이 먹을 쌀이 나왔던 사인바위

스님이 먹을 쌀이 나왔던 사인바위 ▶ 김구 선생이 다녀갔던 사인암에는 샘바위가 있다. 그 떨어진 물을 받아 먹으면 불임한 사람도 임신을 했다. 그 아래에는 조그만 암자가 있어 한 스님이 살았는데 날마다 스님이 먹을 식량이 샘바위에서 나왔다. 그러다 한 스님이 더 기거하게 되어 두 사람 분의 식량을 구하려고 막대기로 샘바위 구멍을 쑤셨더니, 그 뒤로는 뜬물만 흘렀다. 우리가 그 한학을 배울 때 사인정 얘기를 해서 한시를 모도 짓고 그랬는데. 그 친구 하나가, 저기는 지금 영광 김 씨의 제각이고 김구 선생님이 여기를 그 여기서 일정기간을 계셨다, 이렇게 저기 한디 그 역사는 잘 모르겠어요. 그랬는데 그 친구가 저녁에 한시를 지으면서 한학을 할 때 그 잘 저기를 했는데 유래는 그래요. 거기가 지금 이렇게 물샘..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마을전설과 유래로 지은 도로명,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

마을전설과 유래로 지은 도로명,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 ▶ 마을 뒷산에는 매 머리를 닮은 매박골이 있고 마을 앞에는 매의 먹이인 새들이 깃드는 솔숲이 있었다. 아랫마을 쪽 마을 중심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올라가 놀았던 마당바위가 있다. 그래서 도로명을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로 지었다. 그리고 인제 마즈막으로 송암리 도로명이 정해질 때 우리가 개발위원회에서 논의를 해가지고 송암리를 그 뺄지를 몰랐어요. 송암리 어느 골목 멫 길 이럴 줄 알았는데. 인제 그 제가 하는 게 마을의 뒷산이 지금 그 매박골이라고, 저그 등에 보이는 저기가 지금 매에 새 같은 것을 잡아먹고 사는 거. 매에 눈이 양쪽으로 배게 가지고 틀림없는 매 머리가 돼있어요. 그래서 그 밑에가 그 옹달샘 정도로 좋지는 않았는디 있었는디 거그서 물을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 송암은 강진 풍동과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풍동 사람들은 가까워서 장흥 장을 보러 송암을 지나다녔다. 군 경계인 사인암 앞에는 주막거리가 셋이나 있었는데 풍동사람들이 와서 위세를 부리고 놀았다. 옛날에 풍동은 반촌이고 송암은 옹기를 굽는 민촌이었다. 어느 날은 송암에 사는 박영감을 혼내주려고 풍동 사람들이 때로 와 중보에 숨어 있었다. 힘이 쌘 박영감은 때로 몰려온 풍동 사람들을 헛기침 하나로 물리쳤다. 저희 그 외할아버지되신 분이에요. 그래서 인자 이름은 제가 인자 그냥 박영감, 우리 어머니 성이 밀양 박 씨기 때문에 박영감인데. 여기서 그 군동 쪽 3개 마을이 이용하는 그 농사 물이 그 이케 저 감천교 위에 보가 있어요. 거기서 이렇게 우리 들을 경유해서..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한국전쟁 때 마을사람 모두를 살렸던 당산제

한국전쟁 때 마을사람 모두를 살렸던 당산제 ▶ 송암마을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데 지금은 당산나무 앞에 제단까지 마련하여 이어오고 있다. 당산제를 모시고 나면 마을사람 모두가 나와 같이 흥겹게 놀며 화합을 다졌다. 이 정신으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 편에 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숨겨주어 마을에서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어려서 그 당산제 모신 것을 보면은 15일 전에 초하루를 막 지나면은 이주 동안을 부부가 합방도 안하고, 가운데 방안에다 물동이를 놓고 이렇게 그 한방에서 지내지만은 매일 또 이렇게 정화수를 떠다가 목욕을 하고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여기다가[당산나무를 가리키며] 인제 이렇게 해서 딱 방을 붙이는데, 누구누구가 유사하고 누구누구는 인자 징, 꽹가리, 그런 것까지 고수 분 뭐 해서 전부..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인공시절 아녀자들 끌려나와 매 맞는 광경

인공시절 아녀자들 끌려나와 매 맞는 광경 ▶ 인공시절, 남정네들이 다 도망 가버리자 아녀자들을 끌어내 줄을 세워 매를 때렸다. 산사람들이 잠깐 막걸리를 먹으러 간 사이 매 맞은 옆줄로 가 얼굴과 옷에 피칠갑을 해서 매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안에는 또 여자들 모도 잡아냅디다. 애기 업은 놈, 안업은 놈 모도 잡아내서, “다 느그들 남자들 나간 사람 다 나와. 너 이년들 다 나와.” 그랍디다. 그래서 애기 업고 나갔제. 애기 안업은 사람, 업은 사람 한 줄, 두 줄, 석 줄, 넉 줄을 딱 서. 꼭 넉 줄이여, 동네가 큰께. 넉 줄을 조르라니 슨께, “그 줄 한 번쓱 패, 이놈 새끼들 모도.” 대그빡도 때러불고 모도 이놈도 때러불고. 그냥 요런데[얼굴을 만지며] 때러분께 터지고 피가 날꺼 아니요.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인공시절, 무던한 꾀로 남편을 피신시킨 당돌한 아내

인공시절, 무던한 꾀로 남편을 피신시킨 당돌한 아내 ▶ 인공시절, 병영에 있는 집에 온 남편을 산사람들이 잡으러 오자 아내는 남편이 지금 방안 구석에 숨어있는데도 논에 갔다고 당돌하게 말하고, 그들이 논에 갔다 온 사이 남편을 곳간에 숨겨 위기를 벗어났다. 그래가꼬 인공이 돌아왔잖아요, 인공. 인공이 돌아오니께 쩌어 배녕(강진 병영) 중고란데 큰 동네에서 살었어요. 살었는디 모도 전부 남자들 내뺀 사람은 다 여자들 다 나오니라, 왜 남자를 오락하제 남자들 다 피신하고 없냐. 그라고 모다 우리덜 잡어갈라고 인자, 모다 우리 잡어갈라고. 남자들 다 그때 언제냐 그라면, 인공 때구만. 인공 때 인자 밤에먼 산에서 내려와요, 밤에먼. 촌에 산께 우리가. 밤에먼 디야지, “요 새끼 디아지 잡어.” 마악 패 죽에...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공출 끌려가다 해방되어 풀려난 큰애기

공출 끌려가다 해방되어 풀려난 큰애기 ▶ 일제강점기 공출로 끌려가다가 해방이 되면서 겨우 풀려난 큰애기는 또 그런 일이 있을까 염려한 까닭에 17살에 시집을 왔다. 내가 어째서 시집을 왔냐 그러면 그 때 열일곱에 안 갈 것인디. 공출을 가, 여자 공출. 그래서 저닉에는 크내기들 나오라고 합디다, 나오라고 한께. 바구리에다 도장 찍은 놈 딱딱 놓고 한나 집어라. 굵은 크내기들, 스물 넘은 크내기들 안 집은디 어린 거시 집어. 딱 집어서 둘이다 우리가 딱 집어 가꼬, 인자 낼 모렌 가 꺼시다, 그란디 낼 모렌 가 꺼시다 그래. 와따 인자 저 우꼭대기서 시방 차를 타러 나오라 게요, 모도. 모도 나오니라, 할 수 없이 나와야지. 그라먼 죽인다 한디. 그랑께 할 수 없이 나옹께, 차가 온디 고놈을 막 타고 이렇..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기양리집 뒤안과 병영 친정, 그리고 백련소에서 만난 도깨비불

기양리집 뒤안과 병영 친정, 그리고 백련소에서 만난 도깨비불 ▶ 할머니는 기양리집 뒤안에서 아들과 딸이, 친정인 병영에서 어머니가 겪은 도깨비 홀린 이야기, 그리고 기양리에서 연산리 신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백련소에서 도깨비에 홀려 물에 빠져 사람이 죽은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냈다. 우리 아들이 방위, 서울에서 살다가 저 방위 받으러 왔는디, 아 애기가 오래 되 갖고도, 저 억불산에서 방위 받는다 한디 얼릉 안 와. 꼭 저물게 오드라고. 온디 어르르르 어르르르…[두 팔과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떨며] “아가 왜 그라냐 왜 그라냐” 그란께, 저기서 이 뒤안에서 크으은 것이 그냥 마악 이렇게 손을 젓음시로[한 팔을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해서 이렇게 쨋게 온다고, 마악 폭 드러 오드라요. 그래서 그래,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마을에 논 닷 마지기를 내놓은 동네 할머니, 태고여사

마을에 논 닷 마지기를 내놓은 동네 할머니, 태고여사 ▶ 옛날에 자손이 없던 동네 할머니는 마을에 논 닷 마지기를 내놓았다. 마을에서는 이장을 중심으로 매년 시월 초닷새 날이면 ‘태고여사 신위’라고 지방을 붙이고 제사를 지낸다. 동답은 옛날 그 저 할머니 한 분이 자손이 없어가지고 돌아가시면서 논을 다섯 마지긴가 여그따 내놨어. 이 회관 터도 그 냥반이 내 논 그 자리여. - (그 할머니 성 씨가 어떻게 됐을까요.) 모르제 태고 여사라고 해. 태고 할머니라고. - [우리 마을에서 제사 모실 때 그러잖아요. 태고여사 신위. 그래갖고 제사 모시는 거요.] - (그 분 제사는 언제 모셔요.) - [시월 초닷새 날.] 그 그건 항시 이장이 준비해서 이장이 지내 이장이. 쭈욱 그래 내려왔어 쭈욱. 태고 여사라고,..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구시고개, 소가 밥을 먹는 형국

구시고개, 소가 밥을 먹는 형국 ▶ 행원마을은 소가 드러누워 있는 형국이다. 지금 장흥IC가 소가 밥을 먹는 형국의 구시 고개인데 없어져버려 마을의 기운이 쇠했다. 우암산 중턱에가 있는데 지금은 안 보여 숲이 차 부닌까. 그 전에 나무가 없고 그랄 때는 우뚝하니 서가지고 보였지. 구시 고개는 인자 없어져 부렀어. 쩌그 저 거가 어디냐믄 지금 거 저 장흥 아이시, 거가 구시 고개여. 그랑께 그 구시 고개는 소가 밥을 먹는 그 형국이라 그래갖고는 구시 고개라 했는데 거기가 밥을 먹는 데라서 명당자리가 있었어. 그란디 지금은 파헤쳐져 부렀제. 그러닌까 행원이 베러부렀제 그 짠가부러서.행원은 저쪽에 나가서 보믄 저쪽에가 머리고 이렇게 소가 딱 드러누워 있는 형국이 보여. 장흥IC로 변한 구시고개 자료번호 / 0..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고싸움과 중로보기

고싸움과 중로보기 ▶ 보림문화제 고싸움은 대단했다. 우리 마을에서 새끼줄로 꼬아 고를 만들었다. 마을 앞 들판에서도 내안리와 원도리 사람들까지 와서 고싸움을 했다. 마을 처녀들은 이웃 마을 처녀들과 강강수월래 중로보기를 하면서 놀았다. 행원에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멫 분 안 되지만은 항시 고 제작을 맡어서 했기 때문에 지금도 고를 꼬아라 하먼 딱 만들어낼 수 있어 지금도. 그란데 그 행사가 없어지고 지금 멫 년 안 만들고 그러닌까 그 요령이 자꾸 저 헷갈려지제. 우리 마을에서 모도 만들어가지고 나갔으닌까. 그라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고. 또 인제 고가, 그 고가 행진을 하다 보면은 이 새끼줄 이라나서 옆으로 쓰러진다든가 머 그라먼 가서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인제. 고 사용하는 방법도 그 타는 사..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엄청나게 큰 비자나무와 그 앞의 사은숙배(謝恩肅拜) 비

엄청나게 큰 비자나무와 그 앞의 사은숙배(謝恩肅拜) 비 ▶ 마을 뒷산에는 강진군수로 있다 마을로 들어 온 김협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엄청나게 큰 비자나무가 있다. 그 앞에는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절을 올린 비가 하나 있다. 절터 쩌어 올라가면은 비자나무가 아마, 어서 그렇게 큰 것을 나 구경을 못했어. 그러닌까 그 연대를 우리가 그 연대를 몰라. 왜 그라냐면 그 절이 그러닌까 언제서부터 서있었는지 그것도 모르고. 여그서 그냥 쩌쪽으로 쫓아내부렀기 때문에. 전혀 그 기록도 없고. - [그 앞에 비가 한나 있는디.] 그건 사은대비여. 사은대비는 그전에 그 김협 할아부지가 쩌그 저 머여 북쪽 임금님이 계신데를 보고 사은숙배(謝恩肅拜)를 한 데여, 가서 절해. 그 양반이 여그서 강진군수로 계시다가 여 행원으로 ..

장흥읍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