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07 7

[문림편] 고산향약계

고산향약계 ▶ 관산읍의 이전 행정명인 고산(관산의 옛지방) 향약계에 관한 이야기. 1867년에 창계한 향약계의 구성 마을명, 규약, 세칙사항 들을 담고 있다. 이후 고산면이 고하면으로 분리되면서 14마을이 빠져나가서 따로 향약을 만들게 되었으나 이는 도중에 없어지고 고산향약계만 현재까지 70여 명의 계원들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고산향약계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창계돼 갖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계인데, 우리 고산향약계는 1867년 고종 4년에 27개 마을이 70냥 6전을 갹출해가지고 돈을 모금해가지고 창계를 하면서 절목을 그때 만들었는데, 절목이라는 것은 요새 말하자면 계칙, 계 회칙이제이? 약규를 만든 거여. 이때 참여한 마을이 있어. 그것이 중요하다고 봐. 지금 우리가 모르는 마을..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택과 종가이야기 2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택과 종가이야기 2 ▶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창고 등 모두 8가옥으로 구성된 장흥 위씨 판서공파의 종택은 2004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이 집에는 400년 된 천릉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위치도 좋아서 방촌의 들과 23번 국도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서적과 철피리와 옥피리, 영여 등 각종 유물과 유품이 소장되어 있기도 한 곳이다. 시방 개수를 하니라고 집을 뜯었다 다시 지었는디 나는 그전에, 과거 그전에 있던 그 집에서 내가 출생을 했어요. 그 집이 어떻게 되었냐, 그 집이 디귿자 집이여, 디귿자 집. 그라고 사랑채가 앞으로 딱 막고 있기 때문에 딱 집이 입 구(口)자. 안 그라믄 대문만 닫쳐 불면 밖에 영 사람이 아이고 못 들어 그렇게 집이 ..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택과 종가이야기 1

장흥위씨 판서공파 종택과 종가이야기 1 ▶ 관산읍 방촌마을에 자리 잡은 장흥 위씨 판서공파 종택은 1623년에 지어졌다. 14대를 이어온 종가로, 모두 여덟 채의 가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려시대 때에는 동헌 터였다. 파명은 조선 선조 때 가문이 호조판서 벼슬자리에 오르면서 ‘판서공파’가 되었다. 이후 주로 무과 쪽에서 많은 후손들이 활약을 해왔다. 또 호남의 3대 실학자로 불리는 존재 위백규 선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장흥 위씨 판서공파 종택은 방촌리 내동마을 492번지에 위치를 하고 있는데 이 터는 동헌 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 동헌 터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전라남도 민속자료 38호로 86년도 2월 7일날 지정이 됐어요, 이 가옥에 대해서. 그전에는 위성렬 가옥, 종..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무기계의 유래와 역할

무기계의 유래와 역할 ▶ 방촌마을에는 무기계(無忌契)라 부르는 계가 조직되어 있다. 이는 이름 그대로 ‘시기나 질투 같은 다툼이 없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존재 위백규 선생이 창계한 것이다. 이 무기계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매년 음력 2월이면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의 액운을 없애기 위한 천관 산신제를 지낸다. 무기계(無忌契)는, 이 마을의 무기계라는, 무자는 없을 무자하고 기자는 다툴 기자예요. 그래서 다툼이 없이, 왜 그냐면 이게 어느 때 만들어졌냐 하면 존재 위백규 선생이 한 6~70 정도 나이 때 만들어진 것 같아요. 만들어졌는데, 아마 그때 당시에도 그 일테면 이 그,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그런 게 있잖아요, 시기하고 질투. 인제 그런 걸 없애는 마을, 그런 그런 것이 없는 ..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방촌마을의 유래와 방촌팔경(傍村八景)

방촌마을의 유래와 방촌팔경(傍村八景) ▶ 방촌마을은 조선 건국 후 장흥 위씨 자손들이 들어와 세를 이루고 살게 되면서 형성되었는데, 모두 12뜸으로 이뤄져 있으며 현재(2016년) 총 110가구가 살고 있다. 방촌마을은 상잠산이라든가 탑동, 장천 쉥골, 계춘동 등 방촌 주변의 산과 바다를 비롯한 풍광이나 방촌마을을 이루는 뜸들과 관련한 갖가지 풍경을 글로 담아낸 「방촌팔경」을 통해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방촌마을은 통일신라 때 정안현의 치소였고, 고려 때 장흥부의 치소였는데, 고려 말에 외구의 침입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 돼서, 이 치소가 나주 봉황에 있는 철야현으로 피난을 갑니다, 내륙지방으로. 그러고 나서 조선이 건국되고 그러니까 어느 때나 국세가 약해지면 왜구가 창궐했어요. 창궐했는데, 고..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네 아들이 과거급제하여 쓴 경연대 한시

네 아들이 과거급제하여 쓴 경연대 한시 ▶ 기산 경연대에는 백회가 네 아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며 기쁨을 노래한 한시가 한 수 적혀있다. 그 속에는 지원타시총급인(只願他時摠及人)이라는 문장도 나오는데 이를 따라 타 성씨인 남계 김윤 등 네 사람이 기산 봉명재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다. 우선 먼저 경연대(慶宴臺)에 시가 있거든요. 저희들 경연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할께요. 봉명재 서재에서 과거 급제자가 열네 분이 나오시니까 경사스러운 잔치를 벌렸다고 해서 경연대 거든요. 지금 토대를 쌓아놓고 거기서 이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거기서 마을잔치를 하고 도 관찰사까지 왔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요. 인자 그 표석을 이렇게 어른들이 오래 전에 해놓으셨는데 저희들은 표석을 딲고 보니까 뒤에서, 표면 경연..

문림의향 특집 2017.09.07

[문림편] 백광홍의 관서별곡과 정철의 관동별곡

백광홍의 관서별곡과 정철의 관동별곡 ▶ 정철은 백광훈과 친구 사이라 기산에 자주 왔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광홍의 관서별곡을 접하게 되었다. 한편 백광홍은 장흥으로 귀양 온 신잠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 이후 36살에 요절하기 전 백광홍은 관서별곡을 쓰고 이에 착안해서 정철은 관동별곡을 쓴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과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과는 아주 절친한 친구였어요. 기봉 백광홍(岐峰 白光弘)과는 14살 차이가 나요. 그런데 제가 아까 정여립의 난을 얘기했는데 송강 정철은 몰락한 경기도 양주 쪽 양반이야 잉. 면앙정가(俛仰亭歌)를 쓴 송순(宋純)이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정승을 지내고 낙향해가지고 담양에서 살았던 분이여. 면앙정가, 면앙정을 지어놓고 거기서 면앙정가를 짓고 낮잠을 자는..

문림의향 특집 2017.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