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10/25 7

[유치면] 앉아서 삼천리 서서 삼만리

앉아서 삼천리 서서 삼만리 ▶ 영암 넘어가는 둔덕재에 부자들이 살았는데, 한 부잣집 일꾼이 모친상을 당해 다른 일꾼들과 산등에 올라 묘를 쓰는데, 그 묘자리가 앉아서 삼천리를 보는 명당이었다. 지나가던 대사가 이를 보고 묘자리에 욕심이 나 핑계를 대며 다른 곳에 가서 묘를 쓰라고 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묘를 쓰려고 하니 그 자리는 서서 삼만리는 보는 더 좋은 명당이었다. 다만 관을 눕히지 않고 세워서 묘를 써야 하는 자리였다. 대사는 욕심이 났지만 일꾼들이 틀림없이 관을 눕혀 묘를 쓸 것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는데, 무덤 구덩이를 파던 일꾼이 무덤 안이 어둡다며 묘를 세워서 써야겠다며 결국 관을 세워서 묘를 썼다. 이에 대사도 할 말을 잃었다. 실화라 보면 실화고, 나도 어른들한테 ..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배부른 벙어리가 나온다는 묘자리

배부른 벙어리가 나온다는 묘자리 ▶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한 대사가 길을 가다 한 주민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답례로 묘자리를 알려줬는데, 그 자리가 밥은 맘껏 먹을 수 있지만 벙어리 자식 셋을 낳을 자리라 했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주민은 대사의 말대로 그 자리에 묘를 썼는데 실제로 자식 셋이 벙어리였다. 유치면 신풍리라는 데가 바로 요 밑이 거든. 거기 사시는 분이, 인자 이라시라는 꼴창이 있어. 그 골짱 밑에가 논 3마지기를 번디 논 서마지기 벌어갖고는 가족이 항시 굶어. 먹고 살 길이 없어. 길이 없는디, 거기서 어느 대사가 지나 감시롱 배고프다고 해. 점심을 싸와서 논에서 일을 한디 대사가 지나 감시롱 같이 점심 좀 나눠먹을 수 없냐고. 그냥 그란께 그 대사가 생전 밥은 맘대로 자시고 살..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3남매의 한국전쟁… 적군과 아군의 경계에서

3남매의 한국전쟁… 적군과 아군의 경계에서 ▶ 한국전쟁 중에 반란군 소년단장으로 활동했던 구술자와 반란군 소대장으로 화악산 전투에서 사망한 형님 그리고 반란군에 참여했다 국군장교와 결혼한 누이의 적과 아군의 경계에서 죽거나 살아난 이야기. 내가 4남 1녀 막둥이인데, 우게 형님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출신이여. 반란사건 해체되고 여그 유치 와가지고 여그 있으면서 유치면에서 젊은 사람 여남은 명을 조직을 했어. 그래도 반란사건을 투명을 갖고 여그서 지키고 있어. 근디 경찰이 잡으러 댕개. 경찰이 잡으러 오면 때려 묶어다가 방에다 가둬 놓고 총을 빼어 불고 빼어 불고 그래. 우리 형님이 말하자면 두목이여. 근디 그전에는 벽이 벽돌이 아니라 흙으로 지었잖아. 근께 경찰이 밤에 벽을 뚫고 내빼부렀어. 그래갖고..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내가 군인으로 보이요? 반란군으로 보이요?

내가 군인으로 보이요? 반란군으로 보이요? ▶ 구술자가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낮에는 군인, 저녁에는 반란군을 피해 집 근처 토굴에서 지내며 겨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로, 특별히 구술자의 아버지가 일촉즉발의 긴급한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며 전쟁 통에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지켜냈다는 것을 증언했다. 그러니까 6·25가 일어 났는디 막 피난을 가야한다고 그라드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어린것들을 어떻게 산으로 데꼬 다니냐”며 집에서 걱정을 하시더니 저기 꼬랑창에 산속에 가서 홀을 팠어요. 쪼까 큰 방만하게. 우게는 얼음나무 같은 것이 얽혀갖고 있고 옆에는 꼬랑물이 쫄쫄졸 내려간 데다. 물도 사용해야 되니까. 장소를 보셨는지 홀을 파갖고 네모반듯하게 반반하게 해놓고 잔디 띱사 그런 것을 폭삭하니 깔았어..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호랑이 도깨비보다 무서운 일본군

호랑이 도깨비보다 무서운 일본군 ▶ 일제강점기에 구술자의 친정아버지가 영암에서 식량을 구했는데, 일본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밤중에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 도깨비에게 홀려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앞에 나타나서 겁에 질려 도망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아버지를 집까지 인도했다. 너무너무 참 혹독한 일을 겪으셨어. 우리 친정아버님이. 일본사람들이 곡식을 식량을 빼앗아가잖아요. 그랬는데 늘 뺏겨불고 먹을 것이 없어서. 우리 아버님이 자손을 7남매를 두셨는디 홍역에 4남매를 잃어불고 서이만 길르셨더라요. 당신 속으로 귀하시제. 내 귀한 자식들 이렇게 배를 골리고 일본놈들 때문에 내가 열심히 일을 하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는디 굶게 되신다고 한탄을 하시고 영암 모..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연산군 후손들이 살았다는 소양마을

연산군 후손들이 살았다는 소양마을 ▶ 연산군이 죽고 그 후손들이 소양마을로 들어와 살았다. 나라에서 땅을 줘 담배와 콩, 팥을 재배하면서 험하게 살았다. 후손들이 재배한 담배는 유치면 특산품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후손들은 한국전쟁 이후 모두 타지로 떠나고 현재 구술자만 남아 있다. 여기가 전해오는 말씀으로는 전주 이씨들, 연산군 후손들이 여기 들어와서 이리 피난 오셨어. 폭군으로 해갖고. 지그 어머니가 고향이 해남인 갑더만. 거기서 못된 짓을 해갖고 나라에서 추방 되어갖고. 해남 윤씨가 자기 어머니인디 사형을 시켜버리니까 자기 외할머니가 간직했다가 연산군을 보여줬어. 보여준께 처음에는 연산군 참 잘했는데 그것 때문에 획 돌아가지고 반대로 폭군이 되아 갖고. - (후손들이 여기로 쫓겨났어요?) 여기..

유치면 2017.10.25

[유치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돌아온 아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돌아온 아이 ▶ 오래전에 더우면 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잤는데, 종종 어린아이들이 없어졌다. 주민들은 호랑이가 물어갔다고 여겨 아침에 징과 꽹과리를 치며 액막이를 하면 호랑이가 아이를 돌려줬다고 한다. 옛날에 호식이가 있어. 범이 사람을 잡아가는 그것 보고. 인자 죽여부르는 수도 있고. 그란데 그때는 더워서 문 열어놓고 자거든. 그란디 어린애가 없어. 지금도 경찰하는 문 뭐시기 그 누난데, 지그 누나가 없어졌어. 동네에서 막 액맥이를 치고 찾아간거여. 그전에는 우리 부락 부자들이 일꾼들 둘이씩 데리고 밤마지기 간께 호걸이 그 누나를 앉혀놨어. 그놈을 찾아온 얘기도 있고. - (그 누님이 살았어요?) 살았지. (과거에는) 농악 꽹과리 징 이런 게 없는 게 없어. 애기가 없어지믄 꽹과리, ..

유치면 2017.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