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11/08 31

[부산면] 일제강점기 쑥으로 덮은 쌀밥

일제강점기 쑥으로 덮은 쌀밥 ▶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쌀을 빼앗아가 밥을 먹을 때도 쑥으로 덮어 놓고 먹었다는 단편 기억을 전했다. 내가 5살 때 해방되었는데, 밥을 먹을 때 쑥을 밥 위에 덮어 놓고 먹었제. 일제시대 일본놈들 말도 못해. 쌀밥을 먹는지 뭘 먹는지 조사를 나와. 쌀밥을 먹으면 뺏어가지. 그런 정도로 일본놈들 말도 못해. 나락 한가마니라도 있으면 집에 못 놓아둬. 땅굴을 파서 묻어 놓든지 어쩌든지 해야제. 뺏어 가니께.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1117_WWG_0003 제보자(구술자) / 위원규(남, 84세, 기동마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윤씨 집성촌에서 위씨 집성촌으로

윤씨 집성촌에서 위씨 집성촌으로 ▶ 기동마을은 원래 윤씨 집성촌으로 형성되었으나 약 450년 전부터 위 씨 집성촌으로 바뀌었다. 윤씨 집성촌일 때 기와집이 많고 부유했던 것으로 추측되나 몰락한 사연은 알 수 없다. 여그가 장흥 위씨 집성촌인데 성촌된 지 450여 년 됐어요. 과거에는 130여 가구가 살았는데 현재는 5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는 탐진강을 노들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는데, 다리가 1970년대에나 놓아졌어요. 여그서 장흥중·고등학교를 다닐라면 5km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곤 했거든요. 겨울에는 노둣돌이 얼어 강이 얼면 얼음을 타고 건너고. 어린애들은 엎어서 건너고 했어. 책가방이고 뭐고 다 들어다 주고 그랬어. 우리 부락은 위치가 참 좋아. 마을에서 천석이 두 분이 나왔어...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남자는 우장 여자는 길쌈

남자는 우장 여자는 길쌈 ▶ 탐진강변에 위치한 기동마을은 전통적으로 부유하고 부지런한 마을로 유명했다. 농사 외에도 겨울에 남자는 우장(비옷)을 엮고 여자들은 쉴 새 없이 길쌈을 했다. 또 강변 밭에서 재배한 무가 좋아 일대에 유명했다. 우리 부락은 겨울철에도 놀지 않았다. 겨울에 우장(비옷)을 만들었다. 장흥에서는 우장 만드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강진 병영장에까지 나가 팔고 그래. 우장은 여름철에 띠풀을 비어다가 강변에 말려서 엮고 겨울에는 단풍이 든 띠풀을 비어다가 엮어. 새끼 꼬듯이 꼬아. 우리 마을이 부촌인데 강변에 밭이 좋았어. 여름에는 외수박 놓고 가을에는 그 자리에 무와 배추를 심어. 안양장이고 장흥장이고 전부 기동 무여. 장흥 장날이면 우리 마을 무가 인기가 좋았어. 옛날 무는 달았는데 지..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소박 막아주는 동백나무

소박 막아주는 동백나무 ▶ 동구터라는 암자터 근처에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시루에 대나무와 함께 이 동백나무 가지를 꽂아 혼례를 치르면 신부가 소박을 맞지 않는다. 현재 원주는 고사하고 옆 순이 자라 아름드리를 이루고 있다. ‘동구터’라고 암자터가 있는데, 거그서 한 직선거리로 100~150m 올라가면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어요. 특이해. 수령을 한 300년으로 봤는데 300년 된 동백나무가 없다고 그러네. 우리가 결혼하면 지금은 국화꽃이니 뭐 장식을 하지만, 그 때는 시루를 거꾸러 해놓고 동백꽃하고 대나무를 많이 꽂았거든요. 그란디 그 동백나무가 제일 오래된 것인데 하도 끊어가니까 가을되고 겨울 되면요 가지가 없어. 앙상하게 볼품이 없어. 높이가 9m 되고 넓이가 4~5m 되가지고..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부러진 남근바위

부러진 남근바위 ▶ 관구 금당재를 올라가는 큰길가에 남근바위가 있었는데, 건너 마을인 연산마을에서 봄이 오면 처녀와 과부들이 바람이 나 연산마을 청년들이 남근바위를 결국 부러뜨렸다. 부러진 남근바위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으나 유치면 임 뭐시기 집에 있었다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내가 현지답사를 했는데, 남근바위가 구 금당재 올라가는 곳 바로 우측에 있었어요. 현재는 진주 강씨 묘가 잘 되어 있어요. 그 바위가 1m 30cm 정도 되는데, 어렸을 때 고사리 끊으러 삼촌 따라서 가서 보면 돌이 약간 검은색이여. 아주 까만건 아니고 쑥색 돌인데 남자 귀두같이 생겼어요. 중간까지 있었어요. 거기에 검정 안경테처럼 혈관이 돌출되어 있었어요. 그란디 우게는 반들반들해요. 왜? 큰길이었거든요. 새벽에 옹기..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보림사 모태는 금장사라고

보림사 모태는 금장사라고 ▶ 관한마을에는 1000여 년 전에 지어진 금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들끓어 오래전에 어디론가 옮겨갔다. 주민들은 금장사가 옮겨가 보림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밭 가운데 여기 저기 기왓장이 쌓여 있었고 주춧돌이 여기 저기 나뒹굴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주춧돌로 보이는 큰 돌 7개만이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어렸을 때 조모님이나 조부님께서 팔월 추석이나 명절 때면 기왓장을 주워 오라고 해요. 한 일곱 여덟 살 먹었을 때. 기왓장을 주우려 가면 밭 그런 데가 여댓군데 모데기가 있어. 큰 산 같이 쌓여 있어요. 기왓장이. 그것이 금장사 절터여. 근디 그 절이 화제가 나서 옮긴 게 아니고 갈충, 빈데 껍데기가 많아요. 할아버지한테 말씀을 드..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기우제 지내던 맷돌바위

기우제 지내던 맷돌바위 ▶ 용두산 암자터에 맷돌바위라고 있었다. 아랫돌은 자연석으로 지름이 1.2m가량 되는데 현존하고 있고, 윗돌은 별도의 돌로 만들었는데 마을 어딘가에 매장된 상태이다. 금자리에 비가 오지 않으면 유생들이 회합을 해서 맷돌바위로 올라가 돗자리를 깔고 제를 올리고 축문을 외면 3일 내로 비가 왔다고 한다. 70년대까지 풍속이 전해져 내려왔다. 효자, 금장, 관한 세 개 마을을 합쳐 금자리라고 하는데 가뭄에 비가 안와. 그라면 어르신들이 탑을 해가지고 돼지를 산채로 잡아서 바작에 짊어지고 올라가 다른 제물들과 함께 맷돌바위에 차려놓고 제를 지내. 그라면 우연의 일치로 며칠 안에 소낙비가 왔어. 그것이 70년 때까지 했어. 그 맷돌바위가 용두산 암자터에 아직 있어요. 아랫돌은 자연석인디 지..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구렁이로 변한 동삼

구렁이로 변한 동삼 ▶ 노부잣집에 큰 일꾼과 작은 일꾼이 있었는데, 5월 어느 날 두 일꾼이 대밭을 정리하다 동삼을 발견했다. 두 일꾼은 동삼을 캐서 바위틈에 놔두고 계곡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였는데, 나와 보니 동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구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두 일꾼은 서로를 의심하여 싸움이 벌어졌는데, 마을 주민들이 그 마을 출신인 작은 일꾼을 감싸면서 외지에서 들어온 큰 일꾼은 마을에서 쫓겨났다. 끝내 동삼의 행방을 밝혀지지 않았다. 한 130에서 150년 전이었지. (노부잣집에 큰 일꾼과 작은 일꾼이 있었는데) 큰 일꾼은 여그 사는 양반이 아니에요. 작은 일꾼은 마을 사람이었어요. 그란디 큰 일꾼 박씨와 작은 일꾼 이씨가 여그서 싸운거에요. 5월 어느 날 둘이 대밭 청소를 하다가 동삼을 본 것..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귀신도 감동한 하늘이 내린 효자 안세용

귀신도 감동한 하늘이 내린 효자 안세용 ▶ 효자마을은 충효열의 마을로 주민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안종운 어르신의 종증조할아버지 되는 안세용이 효자로 이름이 높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 도둑과 동물까지 감화시킨 다섯 가지 일화가 있다. 우리 효자마을은 한 오백년 전에 문씨 시조 선생이 보성에서 오셔 가지고 여그 터를 잡았어요. 이후 여러 성씨들이 마을에 들어와 기거하면서 칠팔 개 성씨가 살게 되는데, 이렇게 쭉 내려오다가 우리 마을에 충효 선생들이 나오게 되는데, 나는 우리 효자 할아버지에 대해서, 후손이니까, 얘기 하겠습니다. 우리 효자 할아버지께서는 유교를 도입한 문선공 혜원선생의 22대 손이고 또 죽성공 문원형의 19대 손이에요. 이 양반이, 효자 할아버지가, 1796년생인데 어려서부터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신라 원감국사가 기도하던 병풍바위

신라 원감국사가 기도하던 병풍바위 ▶ 자미마을 병풍바위에는 마애여래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이를 원감국사의 상이라고 말한다. 옛날 일지승이 명당을 찾아 헤매다 자미동에 들어 왔는데 병풍바위 굴에서 원감국사의 행적을 발견하고 상을 새겼다는 얘기다. 일지승이 계셨는데, 그 분이 명당을 찾으러 이 고을로 들어왔어요. 거기서 하신 말씀이 ‘입자미동 유두공지풍 반반어석흔 유고인지적’이란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말을 풀이를 하면 ‘자미마을에 들어서니 옛 두공부의 풍속이 있고 바위에 나타난 뚜렷한 흔적은 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거든요. 자미동이라는 것은 옛날 당나라 문궐인 두공부 그 분을 얘기한 것이고 고인이라는 말은, 원감국사가 계셨는데 그 분을 지칭한 말이었어요. 그분들은 모두 고려초 신라말 인..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경로수로 불리는 은행나무의 보은

경로수로 불리는 은행나무의 보은 ▶ 자미마을 사장나무는 은행나무 두 그루인데 오래전에 누군가 은행나무 한 그루를 베어가 주민들이 원망이 높았다. 베어간 사람이 주민들의 원망 소식을 듣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죽었다. 그 후로 은행나무는 새순을 내고 자랐는데 열매를 많이 맺었다. 주민들은 그 은행나무 열매를 팔아다 노인들을 부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사장나무를 ‘경로수’라 불렀다. (들판 한 가운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그늘에서 쉬었다가 작업을 하고 그러는디, 은행나무 한 그루를 비어 갔어요. 두 그루 중에. 농민들이 원통해서 그 주의에다 금줄을 쳐 놓고 나온 사람마다 매질을 해. 매질을 한시로 “사장나무 비어간 놈 잡아내라”고 외치면서 매질을 하고, 동네 일촌이 나간 사람마다 매질을 하..

부산면 2017.11.08

[유치면] 전쟁 통에 아이 잃고도 아픈 줄 몰랐다

전쟁 통에 아이 잃고도 아픈 줄 몰랐다 ▶ 구술자는 한국전쟁 중에 피난살이를 하다 천연두가 돌아 간난아이 쌍둥이를 잃었다. 구술자는 전쟁 중이라 아이들을 잃고도 아픈 줄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6·25 때 피난댕긴 그런 얘기밖에 몰라요. 나는 관동서 열아홉 살에 시집가 갖고 스무 살에 쌍둥이를 낳았어요. 피난 다녔어요. 아들 쌍둥이 데꼬 다녔어요. 인자 첫애는 죽어불고. - (왜요?) 피난댕기다 죽어붔죠. 두 명 다 죽어부렀어요. 19살에 애기 낳았고 피난 다녔을 때 둘 다 잃었어요. 추덕손님이 왔어요. 마마. 얼굴이 불피워갖고 천연두가 왔어요. 천연두가 돌았어요. - (사람죽고 그런 걸 목격하셨어요?) 밤에는 산으로 피했다가 낮에는 들어오고 그랬지. 사람 죽는 건 못 봤어요. 애기들만 데꼬 피난만 했지 ..

유치면 2017.11.08

[유치면] 어려서 일본으로 밀항해 성공한 정정옥

어려서 일본으로 밀항해 성공한 정정옥 ▶ 구술자의 당숙뻘 되는 정정옥이란 인물이야기다. 정정옥은 130여 년 전에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송아지 판돈으로 8살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밀항했다. 일본에서 잔심부름, 구두닦이, 신문배달 등으로 근근이 지내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후 도요타 자동차의 부품공장을 운영하다 대동아전쟁이 나면서 공장 자리에 아파트를 지워 임대사업으로 자수성가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옛날 남자 한분 그 경력과 생활의 일면을 제가 간단히 얘기하겠습니다. 20년 동안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아들 둘, 형님하고 동생이 있었는데, 형도 남의집살고 동생도 남의집살고, 여덟 살 되어서 남의집살았어. 형이 송아지새끼 한 마리 키워가지고 판돈을 ..

유치면 2017.11.08

[유치면] 인공시절 주민들의 고발로 총살 당한 문씨 일가

인공시절 주민들의 고발로 총살 당한 문씨 일가 ▶ 권세를 누리던 문씨 일가가 인공시절 마을주민들의 고발로 죽임을 당하고 구술자의 아버지도 고초를 겪었다. 구술자는 피난 다니는 와중에 눈을 크게 다쳐 지금은 거의 실명 상태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가지고 두드려 패부렀어. 그런 이야기도 해도 돼요? - (누가 그랬다는 거예요?) 그때는 순경들은 우익이고 산사람들은 좌익이라고 그랬어요. 문씨 대종손이라고 문병희라고 문동하라고 하고 다 돌아가셨어. 우리 문씨 중에서 대종손이여. 거가 그랗게 살면서 종손인게 태만하고 청년들한테 조금 한 귀퉁이 하고 그러고 살았어. 그란디 인공이 닥치니까 인제 서기를 놔두고 “유감이 이 사람한테 뭐있냐?” 하면서 다 적잖아요. “난 멍침 맞았다. 난 뭐해서 뭐했다”며 유감없는 사람..

유치면 2017.11.08

[유치면] 옛 어른들 공부하던 책상바위

옛 어른들 공부하던 책상바위 ▶ 소등산 중턱에 책상처럼 생긴 책상바위가 있는데, 옛 어른들이 그곳에서 학문도 익히고 공도 들였다. 여기 인자 제일 높은 산이 있거든요. 그거이 소등산. 거기 올라가믄은 맑은 날은 바다도 보여요. 거기 중간 만큼에나 책상바위가 있어요. 바위가 쭉 뻗어 나와서 납작하니 있어요. 왜 책상바위냐고 하니까, 옛날에 거기서 글 배우고 공들이고 했다고 책상바위라고 했다고 어르신들이 그래요. 생긴 것도 책상처럼 생겼고 이렇게 쭉 산중턱에 뻗어 나가갖고 납작하니 있어요.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1119_MHR_0005 제보자(구술자) / 문학래(남, 80세, 용문마을)

유치면 2017.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