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대덕읍 37

[대덕읍] 그것이 도깨비 불이었을까?

그것이 도깨비 불이었을까? ▶ 예전에 구술자가 마을 사람과 둘이서 밤에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엘 갔는데, 고기를 잡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산 중턱을 보니 어른 주먹만 한 불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불이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하면서 배 가까이로 날아왔는데, 같이 간 사람이 무서웠던가 얼른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구술자는 용기를 내어 살대(일종의 나무막대기)로 배를 탁탁 쳐서 불을 쫓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려보곤 하는데, 그것이 도개비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이 도깨비란 것이 내가 생각에는 거짓말이라 이것이여, 절대 이거이 거짓말이다. 그란데 여 가마패라고, 여기서 솔찮이 좀 얼마 안 되는 덴데 거기서 고기를 잡게 댕겼어, 밤에. 밤에 이리 고기를 잡게 생겼는데 둘이 가서..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신리의 성촌 과정과 공성산의 유래

신리의 성촌 과정과 공성산의 유래 ▶ 현재의 동신, 서신, 이신 마을에 해당하는 예전의 신리(新里)는 400년 전쯤 김씨와 신씨 양 성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는데, 누워 있는 여성의 형국을 하고 있다. 또 신리에 있는 공성산(孔聖山)은 이 산 아래서 공자와 같은 성인이 날 것이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리가) 성촌이 되기는 한 400년이나 500년 될 것입니다. 그걸 증명하기론 [집 밖, 오른쪽 위쪽을 가리키며] 여기 저 원래 촌 말로 사당나무가 있고, 당산나무가 지금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저 큰 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자 우리가, 우리의 씨족들이 여기에 언제 입촌했는가? 그것도 한 400년 정도나, 전후로 될 것입니다, 족보상으로 문헌을 얘기한다 하믄. 그라고 여기가 인자 김씨..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서낭당 여거서 뭔 여자가 춤을 추고 있더라고

서낭당 여거서 뭔 여자가 춤을 추고 있더라고 ▶ 구술자가 40년 전쯤 회진에 갔다가 대덕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이었다. 서낭당이 있던 지금의 원무덤재 자리 가까이 오니 어떤 여자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수건을 쓰고 춤을 추고 있었다. 너무나 놀라서 죽기 살기로 겨우 거기를 지나치게 됐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허수아비 모양 같은 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10년감수했던 그때 기억이 난다. 그 자리가 바로 원무덤재 자리인 것이다. 그란디 내가… 그때가 몇 10년, 한 40년 전. 40년 전인디 내가 회진으로 장가가 가지고 처갓집엘 갔다가 마음이 이상해갖고는 집에를 오고 잡더라고. 그란디 회진서 저녁밥 묵고 놀다가 이리 건너를 왔어. 이리 온께, 여 항시 무섭다 그러고 항시, [왼쪽을 가리키며] 이쪽에 ..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문턱에서 쉬어간다 하여 문턱바우

문턱에서 쉬어간다 하여 문턱바우 ▶ 천관산 구룡봉과 봉대 사이에는 베틀굴이라고도 불리는 문턱바위가 있다. 베틀같이 생겼다 해서 베틀굴, 문턱에서 쉬어간다고 해서 문턱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새가(사이가), 인자 [손으로 왼편을 가리키며] 구룡봉 요짝으로 가고, [오른편을 가리키며] 봉대 올라가는 길에 하고(길하고) 한가운데가 이렇게 거시기 큰 굴매이로(굴처럼) 딱 생겼는디 이 바우가 이렇게 덮어져갖고 거기가 굴이 띯어져(뚫어져) 있었어. - (근데 이름이 왜 문턱바위예요?) 그란께 거(기)가 문턱바우라고, 문턱에서 쉬어간다 해갖고 문턱바우라고 해요, 문턱바우라 해. 그 문턱바우에서 그렇게 곧장 올라가믄 봉대 올라가기가 쉬워요. 그, 등으로 딱 타고 가. 그란데 그것은 언제든가 쉬 갖고 간께 거..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여기도 옛날엔 호랑이가 쌨었다게

여기도 옛날엔 호랑이가 쌨었다게 ▶ 예전에 월정마을 어느 집 며느리가 새벽에 방아를 찧고 있다가 ‘깽!’하는 소리를 들었다.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아랫집 개를 물고 가버린 것이다. 구술자가 마을 아짐들로부터 들은 실제 이야기로, 옛날에는 이 마을 주변으로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쿠럼 삼서롬 저거 시아버지하고 사는디, 인자 와서 방애를 똥 똥 찍은께(찧으니까) 메느리가 나와서 방애를 똥 똥 찍은께 [경로당 뒤쪽, 마을 안쪽을 가리키며] 요집에서 깽! 하더라게, 개가. 그러더마는 호랭이가 내려와서, 여가 전에 호랭이가 살았다게, 옛날에 살았다게. 깽! 하고 해서 본께는 호랭이가 개를 물고 가버렸어. 요 아랫집에서. 웃집에서는 사람이 사는데 메느리가 방애 찍은께. 방애 찍은께는 깽 하고 하더마는 호랑이..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물이 마르지 않고 요강처럼 채워져 있다고 요강바우

물이 마르지 않고 요강처럼 채워져 있다고 요강바우 ▶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천관산 사방댐 아래쪽으로 ‘요강바우’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 난 홈에 늘 물이 채워져 있어서 그렇게 불리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서 오줌을 누면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던 기억이 구술자에게는 있다. 이후로 천관산에 댐 공사며 주차장 공사 같은 각종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 바위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어릴 적 정겹던 천관산도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인제 요강바우요. 지금은 가서 보면 현 주자창이 돼 있어요, 거기는 다 없어졌더라고. 지금 가서 보면 사방댐 아래쪽으로 해서 이렇게 요강바우라고 있었어요. 바위가 어느 정도 했냐면 우리가 말할 때 한 1톤, 더 될 걸. 1톤이 더 ..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용둠벙에서 살던 용들이 구룡봉에서 하늘로 올라갔대요

용둠벙에서 살던 용들이 구룡봉에서 하늘로 올라갔대요 ▶ 천관산에는 증기기관차의 머리 부분을 닮았다고 하여 연지마을 사람들에게는 기차바위라고도 불리는 구룡바위가 있다. 지금의 천관산 문학관 자리에서 2~3킬로미터 떨어진 용둠벙에 살던 용 아홉 마리가 구룡봉을 통해 승천하였다고 하여 구룡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구룡봉바위가 지금 어르신들은 잘 모르는데 연지 쪽에서는, 일제시대 때 만들었는데 기차바위라고도 하거든요? 그대로? 기차바위는 옛날에 정기, 아니 증기기관차 대, 머리, 대가리라 하면 안 되죠? - (예? 대가리라고 해도 되죠. 하하하.) 앞머리, 이렇게 증기기관차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기차바위라고도 해요. 근데 우리는 구룡봉이라는 말보다 기차바위… 도시락을 벤또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가 일제 잔..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호랑이가 애기를 물고 가더라 하더구만

호랑이가 애기를 물고 가더라 하더구만 ▶ 구술자의 할머니가 어렸을 때였다. 저녁 무렵, 호랑이가 나타나 소녀(구술자의 할머니)를 물고 사라졌다. 소식을 듣고 놀란 마을 사람들이 북과 장구 등을 치며 산으로 가서 묘 있는 곳에 가 보니 호랑이가 소녀의 젖을 베어 먹어버렸더라고 한다. 다행히 소녀는 그 후로도 오래 살아남아 구술자의 할머니가 되었다고. 본께, 호식이가 그, 저녁에 봉창문 열어놓고 어른들이 논디(놀고 있는데) 거시기 애기를 물고 가더라 하더구만. 물고 가서 금방 어찌께 어찌께 해갖고 메구, 양마동서 메구 이라고 치고 어찌께 메구 치고 갔을 것 아닌가, 찾을라고. 간께는 뒤에가 묏이 있던가, 묏 보라 해서 젖통을 딱 비어 묵어버렸더라네, 우리 할마이 젖통을, 베어묵어버렸더라 하더구마. 그래갖고 ..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달팡이재서 모신 잠두마을 당산제

달팡이재서 모신 잠두마을 당산제 ▶ 예전에 잠두마을에서는 ‘달팡이재’라 부르던 고개에서 당산제를 지내곤 했다. 그러다가 마을에 사당나무를 심어서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300년 이상 된 그 나무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당사’라고 우산각처럼 지어서 당제를 이어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외지인들이 많이들 들어오면서 당제를 안 지내게 되고, 그러면서 마을이 옛날과 다르게 점점 빈촌이 되어버렸다. 그 지형이 달팡이재 그래요. - (달팡이재… 달팽이처럼 생긴….) 달팽이라고 그러는 모양이에요. 거기서 사투리로는 달팡이재, 달팡이재 그러거든요.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와서 신작로를 냈지마는 그때는 맨 걸어 다니는 게 재여 재. 재 넘어 댕기는 게 달팡이재, 세부개재, 솔치깨재, 그런 맨 밭 넘을 재. 전부 다 재가..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2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2 ▶ 시대가 급격히 변함에 따라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당집 제사 풍경도 변해간다. 지금은 당제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과거의 절차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간소하게 지내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연동마을에서는 당집 제사를 위해 지극 정성을 쏟았다. 가령 당제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그 한겨울에 제사 사흘 전부터 산의 옹달샘 물을 퍼 날라 가며 음식을 준비한다거나 부정 타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며 매사에 임했다는 것이다. 인제 정해지면은요, 3일 전부터 쩌 우에 올라, 옹달샘 가서 목욕하고 물을, 그때는 거기 물을 써요, 음식을 만드는데. 그래갖고 이고 그라고 내려 다니고 옛날에는 뭐 옷이 많았어야제, 적었제. 그란께는 확 다리 이런 데가 트고…. - (그때가 그러니까는 계절로 치면..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1

왕비사당 제사 이야기 1 ▶ 대덕읍 연동마을에 있었던 왕비사당의 예전 제사풍습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제를 지낼 때에는 정월 대보름날 남성 제주와 음식 장만할 여성을 정해서 몸을 정갈하게 한 상태에서 제를 지냈고, 제를 지낸 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밤새 대동놀이를 했다. 제가 객지에서 살다가 29살 때 부락 이장을 봤는데, 그때 당집이 너무 허술해서 옛날 마람으로 엮어가지고 지붕을 올리고, 해년마다. 그래서 이걸 다시 어떻게 기와라도 올려서 다시 짓어 봐야 쓰것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대덕읍에 면장님을 만나가지고 말씀을 드렸죠. 그때 돈으로 5천 원인 것 같은데, 지금 5만 원이라 하니까 내 기억으로는 5천 원인 것 같는데, 그때가 72년도? 그 정도 될 거예요. 그란디. 한 40년 됐지. 그래가지고 ..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다섯 성인(聖人)을 배출한다 하여 오성금

다섯 성인(聖人)을 배출한다 하여 오성금 ▶ ‘오성금’이라는 마을 이름이 지닌 두어 가지 유래가 있다. 이 중 하나는 옛날에 머슴살이를 하던 이가 풀밭에서 금덩어리 다섯 개를 발견해서 주인네에 가져간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오성금’이 ‘성인 다섯 명을 배출한다’는 뜻에서 이리 전해져 내려 왔다는 것인데, 지금은 두 번째 의미(五聖今)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성금이란 데가 전년, 전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으로 해서 했기 때문에 우리는 풍월로 들었죠, 전설을. 그런데 오성금이란 데가 그러니까 금이 다섯 개가 있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고용인이, 남의 집 사는 사람이 풀 비로(풀 베러) 가다가, 가서 상대방 산에서 빛이 나더라는 거예요. 그래 구름도 끼고 금방 비가 쏟아질라 하는디 ..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감태 매던 데가 지금은 다 논 돼 부렀어

감태 매던 데가 지금은 다 논 돼 부렀어 ▶ 지금은 논이 되어버렸지만 예전에는 가학마을 앞 바다, 그 자리가 다 뻘이었다. 뻘에 물이 나면 가서 감태를 매어 팔아다가 생계를 이어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감태를 매던 그 자리에서 이제 논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한편 내저마을이나 고금도 등지에서는 아직도 예전처럼 감태를 매서 내다 판다고 한다. 뻘에 가서 장화도 없이 맨발 벗고 감태 해갖고 고놈 히쳐서(씻어서) 새낙꾸로 줄 쳐서 널어갖고 타래로 묶어서, 장시한테 폴다가 이고 가서 장에서 폴다가 그래갖고, 고놈 폴아서 보쌀 한 되썩 폴아다 밥 해 묵고, 또 물 나면 또 매러 가고… 그라고 살았어, 옛날에. - (보쌀 한 되 할려면 어느 정도 돼야 돼요?) 모르제. - [그건 모르고, 80이 넘어갖고. 많..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서숙하고 질금으로 핀엿을 맨들었제

서숙하고 질금으로 핀엿을 맨들었제 ▶ 1960년대 전후, 가난하게 살던 오산마을 사람들이 서숙(차조)이랑 질금(엿기름)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핀엿이다. 서숙과 질금을 넣어 4시간 이상 달여서 굳히면 핀엿이 되는데, 이 엿을 장에 들고 나가 팔아서 온갖 것을 사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2~30년 전만 해도 많이들 만들던 핀엿을 지금은 마을의 단 세 가구에서만 이어가고 있다. 옛날에 우리가 아무것도 없이 산께는 핀엿 갖고 엿 해갖고 한 데 딱 퍼갖고 자슥들 갤치고… 옛날에 서숙 갖고 했거든, 찰좁쌀. 지금은 싸래기 갖고 해. 그래도 자알 나가요. 그란께 우리가 늙어놔서 못 해, 인자. 못 하는디 한 세 집이 해, 지금. 그 사람 시장에 가서 폴거든. 그란께 서숙, 서숙 갖고 질금하고만 여어(넣어). 그..

대덕읍 2017.09.18

[대덕읍] 소주독 같은 폭탄이 비행기서 떨어졌어

소주독 같은 폭탄이 비행기서 떨어졌어 ▶ 완도군 생일도에서 나고 자라 19살에 이곳 장흥 대덕으로 시집왔다. 17살 무렵 해방이 되었는데 몹시 어수선하던 때였다. 섬 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니면서 바다에 떠다니는 큰 군함을 폭격하고는 했다. 폭격을 당한 군함에서 흩어진 콩기름이 든 통, ‘메리야스’ 같은 것들이 바다 위로 떠다녔고, 그것들을 건져다가 섬사람들과 나눠갖기도 했다. 17살에 해방이 됐어요. 그때 당시, 제국시대 해방이 17살 때 됐었는디. 아, 그때게 그냥… 외국서 그란께 일본… 잊어버렸네, 내가 정신이 좀 거시기 해갖고. 그래서 일본서 우리 한국을 어짤라 했던가 그때 그래갖고… 내가 기억력이 요새 없어가지고… 인자 어렸을 때부텀 그 막 비행기가 떠서 막 날라댕기고 폭발을 땐다(폭격을 한다) 하..

대덕읍 2017.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