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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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면] 산동마을 7개 절터와 신비로운 거대 석축

산동마을 7개 절터와 신비로운 거대 석축 ▶ 산동마을은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고터인데 마을 주변으로 7군데에 절터가 남아 있다. 7군데 모두 집채만 한 돌로 석축을 한 흔적이 있는데 마을주민들은 이를 신비롭게 여긴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석축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7개의 절과 거대석축물에 대한 내용은 구전되지 않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이조 때로 알고 있는디, 절이 일곱 군데가 있어요. 그 절터가 농짝만한 돌로 싼 터가 있어요. 일곱 군 데 다가. 지금을 다 철거 되야부렀지만. 그런데 지금 암자를 지어놓고 지주 한 분이 살고 있거든요. 그분이 절을 지을라고 시주를 할라고 지금 애를 많이 쓰고 있거든요. 잘 된란지 모르것습니다. - (절터가 한 군데 모여 있어요?) 아니, 군데군데 따로..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며느리바위가 던진 수건… 만수재 어르신의 태몽

며느리바위가 던진 수건… 만수재 어르신의 태몽 ▶ 조선시대 만수재란 어르신이 있었는데, 억불산 며느리바위가 수건을 벗어 던지고 용이 승천하려다 끝내 못한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 만수재 어르신은 학식이 뛰어 났으나 끝내 벼슬길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8대 조상이 이름이 민자 기(이민기)로 호는 만수재여. 장흥 관산에서 태어났는데. 그 양반 어머니 꿈에 억불산에 가믄 며느리바위가 있어. 그 며느리가 수건을 벗어서 던지더라요. 수건이 그 할머니집 마당에 떨어졌다. 태몽인디 그래서 그 꿈을 꾸고 또 용이 나타나더니 하늘로 승천하려다가 못하고 또 승천하려다가 못하고 그랬어요. 꿈을 꾸고 만수재 할아버지가 태어났는데 그 양반이 진사는 합격을 하고 더 이상은 등용은 못하시고 시골에서 선생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 ..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만년대기 명당터에 유일한 흠 동매산

만년대기 명당터에 유일한 흠 동매산 ▶ 고산 윤선도 선생이 만년마을을 지나다 만년을 살 명당터인데 단 한 가지 흠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비단전대에 똥이 묻은 꼴이라고 했다는데 주민들은 그 흠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한 부인이 아이를 업고 말궁굴재를 건너다 동매산이 걸어 오는 것을 보고 산이 온통 더럽다고 하니 동매산이 멈춰섰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비단전대에 똥이 동매산이라고 여기고 똥매산이라 부른다. 1600년 전에 고산 윤선도 선생이 벼슬길도 버리고 자기가 일생을 살터를 찾아 다녔는데, 우리 마을을 만년(일만 [만] 해 [년])마을 지나며 몰궁굴재(말궁굴재)를 지나면서 명당터라고 하면서도 한 가지 서운 한 것이 있지만 말은 못하고 해남으로 떠나셨다고 한다. 만년 수만 년을 살 수 있는 좋은 터다...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 구술자의 어머니가 34세에 혼자 된 후 어려운 형편에도 평생 재가를 하지 않고 삭일을 하며 외아들을 키워냈다. 구술자인 아들이 이를 애처롭게 생각해 올해 마을입구에 열녀비를 세웠다. 어머니가 18세에 결혼을 했는데 어버지는 16세였어. 아버지가 나를 19세에 낳았어. 당시 어머니 나이가 21세였고. 결혼은 빨리 했지만 임신이 안됐던 모양이여. 살림이 곤란하고 별로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아버님이 일본 징병되었어. 할 수 없이 끌려가서 해방 이후에 나왔어. 나와서 보니 먹고 살길이 막막해. 그래서 나오셔서 목공을 하신다고 각 처로 돌아다녀. 돈 번다고 남처럼. 그러시다 몇 년 객지로 돌아다니시다 6·25가 터졌어. 당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부렀어. 어머니는 홀로 아들 하나를..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두룡마을 용소와 고려 신승겸 집사성에 관한 전설

두룡마을 용소와 고려 신승겸 집사성에 관한 전설 ▶ 두룡마을에는 용소가 있는데, 용이 물가 백일홍나무를 오르내리며 놀다가 용머리에 가서 승천했다고 한다. 부녀자들이 용소와 관련된 태몽을 꾸면 태어난 아이가 큰 벼슬을 한다고 전하는데, 고려 태조 때 신숭겸도 용소와 관련된 태몽을 꾸고 집사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명흠 전 군수도 용소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저는 평산 신씨로 13대를 두룡마을에서 터를 닦고 사는데, 그때 당시 어른들 말씀이 인자 고려 태조 때 924년에 신라 때에 집사성이라는, 지금으로부터 도지사, 집사성이라는 으뜸 벼슬을 하셨고, 24대 그분이 신자 민 어르신이 490년 전에 쭉 다녀보니까 두룡마을이란 민가가 사람살기에 좋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거기에 터를 잡은 것이 용두마을이라고 했어. 그..

장동면 2017.10.10

[장동면] 아흔아홉골 도깨비 소와 굴

아흔아홉골 도깨비 소와 굴 ▶ 두룡마을에는 도깨비소와 굴이 있는데, 도깨비들이 자기들 마을에서 놀다가 소와 이어진 도깨비굴을 통해 내려와 소에서 목욕을 하고 놀았다고 한다. 도깨비 굴은 현재 메워진 상태고 소는 여전히 깊고 맑다. 옛날에 인자 장동면에서도 가서 보시믄 우리 마을이 자연 그대로가 많아요. 소도 있고 벽도 있고. 산이 많고. 깊은 산이 있다 보니까 아흔아홉골이라 하거든요. 그 산을. 거기는 올라가다 보믄 마을 우측으로 도채비(도깨비)소와 굴이 있는데, 지금은 도깨비불을 볼일이 없거든요. 우리 어렸을 땐 도깨비불이 많았어요. 도깨비불이 있으믄 무서워하고 그러거든요. 밤에는 가질 못해요. 도깨비불이 빤닥빤닥하게 그러니까 도깨비가 살기 좋게 생겼다고. 기차굴처럼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두 개가 ..

장동면 2017.10.10

[장동면] 이담수가 빠져 죽은 보

이담수가 빠져 죽은 보 ▶ 내반마을 보 이름이 이담수인데 이담수라는 사람이 빠져 죽어 이담수라 부른다. 혹자는 이담이란 사람을 인신공양해 쌓은 보라 해서 이담소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어렸을 때 거가 보가 있고 모계나무가 그 밑에 큰 놈이 있어. 그란디 중간에 파손되고 없었는디…. 거그를 이담수라고 한디, 우리가 알기로는 이담수가 거그서 빠져 죽었는가 어째게 죽었어. 그래서 거그를 이담수라고 해. 이담수 내반마을 주민들 자료번호 / 06_12_06_FOT_20161220_BHS_0001 제보자(구술자) / 백형수(남, 84세, 내반마을)

장동면 2017.10.10

[장동면] 큰 산이 있으면 술잔이 있어야지

큰 산이 있으면 술잔이 있어야지 ▶ 내반마을에 큰 산이 있는데 큰 산에 어울리는 술잔 즉 물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저수지를 판 것이 술잔이 되어 마을에 좋았다고 한다. 여그가 큰 산이 있단 말이오. 내반 산이 큰 산이 있어. 그란디 시집을 온께 어른들이 그런 얘기를 하십디다. 산은 있는디 이 마을에 술잔이 없어서 내반이 풀리들 못 한다 그래요. 결국에 나중에는 여그 저수지를 판 것이 큰 산으로 해서는 술잔이 되았어. 그래서 우리 마을이 좋다 이거여. 내반마을 주민들 내반마을 저수지 자료번호 / 06_12_06_FOT_20161220_BYS_0001 제보자(구술자) / 백용순(여, 83세, 내반마을)

장동면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