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13 27

[장흥읍] 한국전쟁 때 점잖은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비극

한국전쟁 때 점잖은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비극 ▶ 한국전쟁 때 마을사람들이 점잖아서 서로 살려주고 지켜주었다. 마을에 도당위원장이 살아서 많은 사람들이 인공에 연루되었다. 수복된 후 어느 날 경찰관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경찰관 가족들의 만류와 애걸에도 세 사람을 총살시켜 버렸다. 6·25때는 그 경찰관들이 와서 거 세 사람인가를 총살시킨 것을 우리가 봤는데, 그 사람들 공산당 했다고 죽여버린 거여. 그란디 그저 6·25이전에 행원까 어뜬 사람이 있었냐며는 그 머 도당위원장이 여그서 살았어. 아 말도 타고 댕기고 그랬어. 그 사람이 여기 있었는데 그 상선 씨라고 있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행원 사람들이 심부름을 많이 해가지고 많이 그 물을 많이 묻쳐 놨어. 그러니까 머 그때 농사 지어묵고 산 사람들이 평..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불어난 물에 허우적대며 건너서 해온 숯꼴산 풀

불어난 물에 허우적대며 건너서 해온 숯꼴산 풀 ▶ 한짐숯을 많이 구워 숯꼴산이라 부르는 곳으로 풀을 하러 갔다. 풀 한 짐을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 눈 아래까지 찼다. 풀 한 짐 그대로 지고 오니라고 혼났다. 숯꼴산에 또 그리 풀하러 많이 댕갰소. 인자 그때 모자리 해놓고 인자 모가 이만쓴쓱 하고 인자. 그때는 비료가 귀한께 저른 저 산에서 풀을 해다가 막 너가꼬 농사짓고 그래라. 래 인자 숯꼴산이로 나 혼자 풀하러 갔었어요. 여러 인자 때끌어 댕긴디 그날은 나 혼자 갔었어라. 혼자 가서 풀 한 짐을 해가꼬 온디 갈 때는 물이 적었는디 올 때는 저 물이 여그 차 여그 차.[두 손으로 눈 아래를 만지며] 어채 그란다냐 했더니 이 밑에 자릿골 보를 막아부렀어. 물을 인자 고이게끔 할라고 보를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맹지실 한 실꾸리가 다 들어 갔던 상바우통이 가물던 날

맹지실 한 실꾸리가 다 들어 갔던 상바우통이 가물던 날 ▶ 어느 여름날 가물어 맹지실 한 실꾸리가 한 다발 다 들어갈 정도로 깊다는 상바우가 물이 말라 버렸다. 병영 까지 고랑 치러 가서 조금 물이 고이니까 고기를 잡아 해먹었다. 상바우는 여름에 그때 무지하게 가물았어. 내가 여그서 농사를 짓고 지금까지 살지만은 깨랑을, 마을에도 물이 없고 저 냇갓도 몰라부렀어라. 그래가꼬 쩌그 저 배녕 저 금먼모퉁이 까징 깨랑 치로 갔어라, 우리가 우리 마을에서. 그래가꼬 인자 거그 인자 물 조깐쓱 있는데 거까지 가 깨랑을 쳤단말이요. 치고 인자 밑에 와서 물이 조깐 고였는디 인자 막 고기를 잡어라. 막 모재모, 쏘고사리 모도 그래가꼬 잡어서 해묵고. 또 상바우통에 물이 몰랐어. 물이 없어. 상바우통 옛날에 맹지실 실..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한국전쟁 때 산사람들에게 쌀을 내준 철없는 아기

한국전쟁 때 산사람들에게 쌀을 내준 철없는 아기 ▶ 어렸을 적 한국전쟁 때 엄마가 나가고 나면 혼자 남아 벽장 흙을 뜯어 먹었다. 한 번은 엄마가 나를 업고 멀리 밭으로 가서 칭얼댔는데 돌아와 보니 마을 사람 둘이 죽어 있었다. 엄마가 옹구 장사해서 팔아온 쌀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자 산사람들이 가져가 버렸다. 우리엄니가 방에다가 자전차를. 그때게는 그 머시기들이 산사람들이 자전게를 돌라강거이든마. 근게 자전차를 방에다가 놔두고 우리엄니가 “여그 집 바라이.” 그라고 갔는디. 내가 그 방에다 놔두고 갔는디 이 백장 흙을 그렇게 내가 뜯어 묵었어. 흙을 뜯어 묵은께 간질간질하니 맛있어. 그래갖고 우리 엄니가 오더니 “어채 너 흙을 그렇게 다 뜯어 묵었냐.” 그랑께 “엄마 흙이 간질간질하니 맛있어 소금 쳤..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방구쟁이 새색시

방구쟁이 새색시 ▶ 몸이 아파서 점을 보고 시숙과 시누이와 영전 긴 냇가 둑을 걸어 돌아오는데 자꾸만 방구가 마려워서 앞질러 가서 여러 번 방구를 끼였다. 방구 안 낀 똥구녁 없고 거짓말 안 한 입 없답. 내가 방구를 잘 끼였단 말이요 옛날에. 옛날에 내가 아펐었든가 어챘든가 점을 하러 갔어라. 여그서 저 송암 우리 시누하고 인자 점을 하러 갔는디. 아 인자 점을 하고 와. 온디 우리 시숙하고 나하고 우리 시누하고 인자 쩌그 영쟁이 그 긴 뚝 있단 말이요, 냇가 뚝. 냇가 뚝을 걸어온디 아이 방구가 매렵더란 말이요. 방구가 나올랑께 바쁘게 나 까진 걸어와. 우리 시누가 “오야 자네는 왜 이러케 걸음을 잘 걸어간가” 그랑께 우리 시숙이 “원래 지수 씨는 걸음을 잘 걸응 께.” 거그서 방구를 카악 끼였더니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외할머니가 담근 밀주

외할머니가 담근 밀주 ▶ 강진병영이 친정인 할머니가 어린 시절, 밀주를 담은 외할머니가 단속을 당하자 술동이에 다리를 담그며 당신 약이라고 하여 위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 배녕까 나 친정이란 말이요. 우리 외할머니 살어서 술을 방에다가 꼭 감춰 났는디 그 사람들이 문을 다 열어 놓고 뒤진께 엥게부렀어. 인자 술이 바글바글바글 끓인디. 그란디 둘이가 동우를 띵꼬 나와 마당으로. 띵고 나와서 이거시 한 말이 넘는다고, 인자 종우에다가 문서를 잡고 적은께는. 겁이 나서 우리 할머니가 다리를 딱 걷더니 술독에다 팍 너부러. “내 약술이다 이놈들아, 내 약술인디 먼 놈의 벌금을 물라고 그러냐. 내가 다리가 이렇게 부서 갖고 아픈게 내 다리 담그니라고 약을 했다….” 약을 해놨다 그란께는 문서 진 놈이 “할머니 안..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디아지(돼지)고기와 도깨비 비찌락(빗자루)

디아지(돼지)고기와 도깨비 비찌락(빗자루) ▶ 밤길을 가는 데 도깨비가 나타나 씨름을 한 다음날 가보니 빗자루가 있었다. 하루는 돼지고기를 사서 밤길을 오는데 도깨비가 또 자꾸 돼지고기 봉달이를 잡아당겨서 먹으라고 주어 버렸다. 간디 우리 친정 외숙이 한임동서 산디 장사를 한께 꼭 밤이먼 댕긴다 말이요. 도로를, 간디 그때게는 포장도로가 아니고 비포장도로 나서 가운데가 차 바쿠 간 데는 돌이 없는디, 차 바쿠 안 단 데는 찔갱이 뽁지, 찔갱이 뽁지가 있어. 요만치[두 손을 둥그런 모양으로] 띠닢싹 같은 것이. 간디 거그만 꼭 가믄 도깨비가 거그서 잡는 거여, 여그 저 채식이 외할아버지를. 그래서 아 인자 쌈을, 거그서 마악 잡고 쌈을, 인자 따악 묶어 놓고. 하래는 묶어 놓고 아침 일찍이 가서 봤드라,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포곡재를 넘어 장흥장 보러 다닌 용산 사람들

포곡재를 넘어 장흥장 보러 다닌 용산 사람들 ▶ 용산 사람들이 장흥장을 보려면 포곡재를 넘어 평화를 거쳐 갔다. 평화 뒤 참샘에서 세수 하고 광대골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하며 넘어 다녔다. 용산 사람들이 어디서 마을에서 댕겼냐 그라믄 용산서 남포사람들이 고기장사 바구리로 이고 댕겼어. 이고 요리 참샘이라고 평화 뒤에 참샘 위에서 세수하고 씻고 장에 가고. 갔다 옴시로도 참샘에서 씻고 포곡재를 넘어 댕갰어. 넘어 다님시롱 장을 봐겠어. - (술을 팔거나 하는 주막은 없었어요.) 주막은 있었제. 주막은 많이 있었어. 그전에 우리는 모르지만 어려서 어른들 하는 말씀이 광대골이라고 있어. 광대골 문 앞에가 주막집이 있었는디, 저 포곡사람 중에 한 분이 말을 타고 댕김시로 요 재를 넘어댕겼다고 하는 그런 기억은..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일년에 대나무 한 번 치면 논 열 마지기 짓는 폭

일년에 대나무 한 번 치면 논 열 마지기 짓는 폭 ▶ 대나무가 옛날에는 금덩이였다. 그래서 대나무 다섯 개 얻으려면 그 집에 가서 하루를 일 해줘야 했다. 대나무 일 년에 한 번 잘라내면 논 열 마지기 짓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옛날에 평화는 뺑 둘러 전부 대밭이었다. 그랑께 그것이 화살로 나갔닥 해서 시누대가 있어 갖고 그래서 죽봉이라 한다고 했싸. 화살로 많이 나갔다고 했어, 거그서 비어 갖닥 했어.대나무가 지금은 더 없는 폭이여. 많이 파서 밭을 맨들아불고. 옛날에는 대가 더 많엤어. - (그럼 그 때 대가 돈이 됐어요?) 돈이 금덩이였어, 금덩이. 옛날에는 금덩이. 인자 금방 여그 앉었다 가신 분. 그 분이 요 손구락만한 거 다섯 개믄 우리가 일 하래 해줘야대. 대 그놈 다섯 개.그랑께 옛날에는 초..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산 능선이 갈라져 광대끈이 떨어져서 광대골

산 능선이 갈라져 광대끈이 떨어져서 광대골 ▶ 광대골에서는 최 씨들이 살았다. 하지만 광대 끈이 떨어지고 빈대가 있고 강도가 많아 마을이 없어졌다. 지금도 바위에 하얀 빈대껍데기가 붙어있고 밭을 갈면 토기와 조각이 많이 나온다. 광대골이라는 데가 거가 원래는 왜 광대골이라고 했냐면. 그 능선이 있었어. 산 능이 있었는디 비가 많이 와 갔고 그 능선이 갈라져 부렀어. 그랑께 광대골인디 광대 끈이 떨어져부렀다 했어. 최 씨들이 거기 광대골에 살았는디, 아까 얘기하대끼 마당배미라고 논 두 마지기가 있어, 이 앞에가. 나락을 등짐을 못 해. 나락으로 못 실어 날려. 못 져 날려. 그랑께 거그서 홀타서 가져 날렸어. 그랬는디 최 씨들 터락 했어. 우리가 알기로는. 그래 갖고 광대 끈이 떨어지고 빈대가 있고 강도가..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남농 허건과 이은상 시인도 감탄한 세 가지색의 배롱나무숲

남농 허건과 이은상 시인도 감탄한 세 가지색의 배롱나무숲 ▶ 평화의 배롱나무는 붉은 백일홍과 흰꽃의 백일백, 그리고 보랏빛과 푸른빛이 나는 백일청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본 노상 이은상이 감탄하고 남농 허건은 그림 소재로 삼았다. 저게 근께 조성은 한 1930년경인가 그때 인자 조성을 했는데 그 20년에서 30년 그 사이, 그때 방죽이 지금 쪼끔 더 넓혔어요. 그 전에는 쪼끔 더 적었는데 그걸 넓히면서 그때 백일홍 나무를 갖다 상당히 큰 백일홍 나무를 갖다 심었어요. 근게 저희들이 제가 50년도 말 그때쯤 해서도 이렇게[두 손을 둥그렇게 만들] 컸었어요. 저희들이 올라가서 항시 놀면 그 나무에 못 올라가게 형님이 자꾸 뭐락 하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지금 제가 생각할 때는 100년이 쫌 넘은 것 같아요,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신숭겸 장군의 본관 평산(平山)에서 유래한 평화(平化)

신숭겸 장군의 본관 평산(平山)에서 유래한 평화(平化) ▶ 고려 말 신숭겸 장군이 내려와 가족과 함께 정착하면서 본관인 평산에서 평 자를 가져와 마을 이름을 평화로 지었다. 이후 김 씨들이 살았고 300여 년 전에 고 씨들이 성촌하여 이어오고 있다. 이 마을이 평화리로 돼있는데 그 평 짜가 땅 [평]짜에다가 될 [화]짜를 쓴 평화리였구요. 그 평화리라고 된 유래는 고려 때 신숭겸 장군이 여기를 내려오셨는데, 그 때 당시 장보고 죽은 이후로 해적들이 자꾸 출몰을 하니까 조정에서 군사하고 그 장군을 내려 보내서 토벌을 좀 해라 했는데. 사실상 해적들이라는 게 전쟁같이 이렇게 맞붙어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까 잡을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오면 쫓아내고 하는 그런 정도로 하고 있다가. 세월이 흐르니..

장흥읍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