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2017/09 296

[용산면] 부용산의 용샘과 고동바위

부용산의 용샘과 고동바위 ▶ 부용산은 용산면의 진산(鎭山)으로 수많은 아픔과 전설을 지니고 있다. 용시암(용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서 거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국난이 있거나 큰 재해가 있을 때 큰 고동소리로 우는 고동바위가 있다. 진짜로 저 용샘이라는 곳은 특이한 곳이여. 그 저 가뭄이 들며는 거 기우제를 지냅니다. 부용산 면민들이. 그라면 거기 가서 기우제를 지내요. 개를 잡아가꼬 올라가서 거그다 피를 뿌리고 고사를 지낸디. 거기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쩌어[부용산을 가리키며] 바위 우게쯤이에요. 정상하고 얼마 차이 아니에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거기는 물이 나와. 산꼭대긴데. 신기하잖습니까. 거 나무가 있다거나. 그래서 그것도 그런 것도 하나의 용산면에서 그걸 사화 식으로..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축지법을 쓴 박학 대감 ▶ 박학 대감은 축지법을 쓰고 천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화순 드들강에서 훈장을 하는데, 제지기가 성실한데 가난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제지기에게 드들강에 나가면 세 상인이 지나갈텐데 세 번째 상인을 꽉 붙잡으라고 했다. 박학 대감 말을 따르니 세 번 째 상인이 돈을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내시는 성기를 못 쓰게 맨드라불거든. 궁녀들 건든다고. 그래서 고자대감이다, 그래. 내시를 인자 거시기를 못 쓰게, 성기를 못 쓰게 고자를 맨들아분다 하든마, 일부러. 고자, 박고자 대감이라고 쩌어 우리 마을에서 나왔어. 박학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축지법을 했던가봐요. 여 저가 저 수풀 있는데 나무 있는 데가 침간정인데, 침간정. 정자가 있었는데. 우리 저 백 고조께서 여기를 인자..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수백 년 이어온 마을 당산제

수백 년 이어온 마을 당산제 ▶ 운주마을에서는 수백 년 동안 당산제를 지내왔다. 정월이면 지금도 지내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온 별신제 계책이 있어 누가 언제 헌관, 축관을 했는지 다 기록되어 있다. - (여기서 당산제를 드린다면서요.) 누백 년 돼. 축문에 보며는 우리 할아버지 때도 누백 년, 우리 아부지도 누백 년 하니께 수백 년 되었쥬, 되었긴. - (지금도 지내요.) 그러문요. 지금도 음식 숙정하는 가정에서는 깨끗한 사람을 골라요. 마을에서, 마을전체에서 깨끗한, 복도 안 입고, 아 부모 복, 복도 안 입고. 애, 어린애 임신한 여자도 안 되고, 홀로 사는 사람도 안 되고. 남녀 해로한 사람 깨끗한 집이서 해. 그래 찬물에다 일주일을 기도하지요. 겨울에 추운디, 정월이니까 춥잖아요..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서 죽은 사람들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서 죽은 사람들 ▶ 한국전쟁 때 부용산에는 좌익들이 많이 숨어살았다. 경찰에게 수많은 좌익들이 산속에서 마을 앞에서 총 맞아 죽었다. 전쟁 이후 그 깊은 골짜기에 가면 좌익들이 마을에서 끌고 가 잡아먹었던 소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여기 저 아까 저 얼음바위골.[부용산을 가리키며] 그때 절터에서 숨어가꼬 반란군들이 숨어가꼬 살았는데. 물 있는디 살거든 물 없는 데서는 못살잖아요. 거 살다가, 어산 거 김상호 알제.[옆 사람을 가리키며] 김상호씨가 잡으러 가다 총을 뺏겨부럿써. 그래가꼬 혼났네. 안 주글만치로 얻어마잔네. 주것네, 그래가꼬 골뱅 들었네, 그 냥반. 총을 잊어부렀서. 그러믄 그 하난 덤풀 다 뒤지고 있는디 내빼부렀제, 반란군들이. 이경으로 제대했거든 이경으로. 거 주글만치..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 부용산은 물이 좋다. 전설 같은 바위도 많고 석굴도 있다. 동학란, 왜정, 해방, 해방후 좌우익 한국전쟁 등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고동바위가 울고. 사람들이 부용산에 깃들어 피신하고 잡혀 와서 많이 죽었다. 하지만 당산제를 정성스럽게 지낸 덕분인지 운주마을사람은 한국전쟁에서도 죽은 사람이 없다. 참 물이 좋아요. 이분은 봤죠. 거기 올라가면 물맛이 좋아요, 좋죠. 참 좋아. 물 먹기가 힘들어. 거꾸로 서야 돼. 떠 묵든 하면 좋은데. 야픈데도 큰 돌이 가라막아가지고 좁고 좁고 좁아. 안 말라 그래도. 큰 석간수에 나온디 그 일상一相(으뜸)이 물이여. 참으로 명천이야. 그야말로 용시암, 용천, 허허허허 용천. 참 좋아. - (여기 고동바위라고도 있다며요.) 고동바위..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남포 소등섬 당할머니

남포 소등섬 당할머니 ▶ 꿈에 나타난 당할머니가 당신을 잘 모시면 마을에 안녕을 가져다주겠다고 하여 500여 년 전부터 마을에서는 당제를 소등섬에서 모시고 있다. 지금은 소등섬에 당할머니 상까지 세우고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를 모신다. 그때는 지금 그 당제를 모신 매년 정월 보름날 당제를 모셔요. 그럼 그 당제 모시기 십오일 전부터서 이 금줄이라고 부락에 들어오는 길 여기따가 줄을 쳐가지고, 줄을 치고 흙을 깔고 해서 여기는 들오지 마시오, 라는 표시를 했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십오일 전부터서 준비를 하고 또 인자 당제를 모신 제주는 그때부터서 출입을 금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조심을 했었어요. 금했어요. 모든 궂은일에 대해서는 일체 참여 할 수가 없었고 또 궂은일을 당한 사람도 그때부터서는 여기를 들오지..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한국전쟁으로 황새들도 떠나버린 마을

한국전쟁으로 황새들도 떠나버린 마을 ▶ 칠리안속은 들이 넓고 물이 흐르고 마을 뒷산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황새들이 살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용산 지서가 불이 나서 타버리자 이 소나무들을 베어다 지서를 다시 지었는데, 그 뒤로 황새들이 마을을 떠나버렸다. 황새가 원래 우리 마을이 조성이 되기 전에 온 것이 아니고 중간에 뒷산에 그 나무가 소나무가 고목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인자 그 황새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에 와가지고 사는데. 그 원인이 보다시피 이 안이 칠리안 속이거든요, 칠리안속. 마을이 크고 들이 좋아. 그렁께 인자 자연적으로 뭐 어패류 같은 거, 뭐 우랭이 같은 거 이런 게 살게 된께 그 놈을 보고 아마 황새들도 그 터를 잡았든가 싶어요. 어른들이 그런 말씀을 하십디다. 그래..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범이 큰물을 건네주어 아버님 시묘를 지킨 삼효자

범이 큰물을 건네주어 아버님 시묘를 지킨 삼효자 ▶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녹원천을 건너 3년 동안 시묘를 다녔다. 어느 날은 비가 많이 와 녹원천을 건널 수 없었는데 범이 나타나 등에 태워 건네주었다. 그랑께 원래 그 양반이 처음에 [위]짜 [한]이라고 그 양반이 아버진디 그 밑에 인자 삼 효자가 난 거시. 그 양반이 돌아가신께 옛날에는 그 머 시묘라 하제, 묘 옆에서 그 머 그것을 했어. 했는디 아 하루 저닉에는 인자 비가 와서, 그 앞으로 큰 냇물이 흘러 녹원천이. 아 여그를 그 시묘를 하러 가야할 꺼인디, 가서 본께 물이 많아서 못 건넌께 범이 와서 그 물을 건네줘서 시묘 장소로 가서 저기를 하고. 그렇게 했다는 저기가 있고, 여러 가지 그 뭐 얘기가 있습디다마는. 아 그랑께 ..

용산면 2017.09.20

[용산면] 백제의 멸망을 상징하는 장흥 임(任), 마(馬), 위(魏)성씨 세 할아버지들의 슬픈 무덤 삼성총

백제의 멸망을 상징하는 장흥 임(任), 마(馬), 위(魏)성씨 세 할아버지들의 슬픈 무덤 삼성총 ▶ 백제가 나당연합군과 전쟁을 벌이던 때 계산마을 뒤 동백쟁이에는 장흥 임씨, 마씨, 위씨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고 세 성씨 할아버지 세 분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젊은이들이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들은 한 집에서 죽어있었다. 그래서 이 세 성씨 할아버지들을 함께 무덤을 써서 삼성총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우리 계산마을에 옛날부터 그 흘러서 전해서 내려오는 얘기 중에서 삼성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 삼성총이 내려왔던 지금 현재 그 지역은 어디를 얘기하냐면, 우리 계산마을이 옛날에는 8반까지 있었는데 반으로 따지면, 지금 현재는 7반까지 있어요. 7반까지 있는..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큰 용이 잠들어 있는 활성안

큰 용이 잠들어 있는 활성안 ▶ 용산 계산마을 뒤에는 활성안이란 성이 있다. 그리고 활성안에서 안양 지천까지 산줄기를 따라 큰 용이 누워있었다. 그런데 장흥읍에서 관산으로 통하는 도로를 내면서 그 용의 허리를 건드리자 용이 놀래서 그 활성안 계곡으로 떨어져 잠들었다. 우리 마을에 인자 학성안이라는 성이 있는데 흔히 학성안이라고 하기도 하고 활성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쭈욱 내려온 얘기를 들어보면 안양하고 우리 용산하고 거쳐서 그런 전설들이 쭈욱 있는 것 같애요. 그래서 인제 보면 그 안양면 지천, 거기가 앞에가 그 쪼끄만 산이 있었는데 그 산만큼 큰 용이 활성안하고 그 안양 지천 산하고 쭉 연대해서 줄기를 따라서 이렇게 누워있었는데. 인자 그 이렇게 장흥읍에서 관산으로 가는 그 도로를 내다보니까,..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조부님의 권유로 상금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사람

조부님의 권유로 상금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사람 ▶ 옛 어르신 중에는 한글을 개글이라고 했다. 장흥중학교 졸업하고 조부님의 권유로 상금 서당을 다니며 논어까지 공부했다. 덕분에 한학에 있어서는 누구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하거나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조상이 요리, 금일읍에 지금 금일읍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계시다가. 또 인자 섬에서 그 분들이 생겨서 섬에서 일생을 마치고 자손들을 섬에다 남겨놔야, 이런 의욕적인 생각에 육지로 그냥, 나는 비록 섬에서 살았었제만 자손까지 섬에다가. 그때만 해도 섬이 그렇게 좋은 터전으로는 인정이 안 되았었죠. 그거를 탈피하기 위해서 요리 나오셨나 봐요. 그렇게 해갖고 인자 여그 나오자 인자 제가 한 2년 후에 어머니 뱃속에 생겼드래요. 그래갖고 나서..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무너뜨린 시루바우 밑에 깔린 산삼

무너뜨린 시루바우 밑에 깔린 산삼 ▶ 옛날 송전마을에는 진원 박씨들이 큰 세를 이루며 잘 살았다. 하루는 중이 동냥을 왔는데 너무 인색하게 대했다. 중은 마을 뒤에 있는 시루바우를 가리키며, 저 시루바우가 안 보이게 무너뜨리면 더 잘 살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후 시루바우를 무너뜨리자 얼마 안 있어 박씨들이 쫄딱 망해 마을을 떠났다. 시루바우가 떨어진 자리에서 자라던 산삼을 다 덮어버렸다. 어느 날 그때 그 어떤 분으로 해서 시루바우 얘기를 내가 한번 들었거든요. 그렇게 해갖고 그 얘기가 좀 빠뜨린 점이 있을랑가 몰겄습니다마는 인자 좀 하면은. 여기하고 이 건너하고가 같은 송전이고, 여기는 초당이고 그렇습니다. 그란디 인자 행정구역이 똑같죠. 그란디 송전마을에가 진원 박씨들이 시절을 이루고 잘 살았드래요..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소쿠리 터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건들자 집에서 떠나버린 용

소쿠리 터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건들자 집에서 떠나버린 용 ▶ 소쿠리 형국의 집안에는 아름드리 엄청나게 큰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어느 날 나무장사가 그 동백나무를 사려해서 계약을 했다. 그날 밤 꿈에 용이 나타나 지붕을 한 번 휘익 감고는 떠나가 버렸다. 이후 계약은 포기했으나 그 동백나무는 끝내 고사했다. 그때 재미있는 일화가 또 한 가지 기억이 납니다. 뭐냐하면 그때 백씨인데 그 아재가 인제 저한테 이집을 파셨는데. 그 아재가 한 번은 이집에 계실 때, 지금 이 사랑채 뒤에 동백나무가 어마어마한 게 있었대요. 그래가지고 그 나무가, 다들 그렇게 기억했답니다. 이 초당하면 초당 서재 옆에는 동백나무, 어마어마했답니다. 그 동백나무가 그렇게 아름다리 컸었는데. 한 번은 나뭇꾼이, 나무 사는 사람이 ..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아부지가 삼아준 짚신 신고, 고구마 싼 보자기 들고 다니던 학교 가는 길

아부지가 삼아준 짚신 신고, 고구마 싼 보자기 들고 다니던 학교 가는 길 ▶ 초등학교 다니던 때 가난해서 아버지가 삼아준 짚신을 신고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까만 물을 들인 무명보에 고구마를 싸 주었다. 그때 당시 담임선생님이 배급 나온 쌀을 더 주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누구든지 보릿고개 가난하게 살았어 이. 논 스무 마지기만 가지믄 일꾼 둘 데리고, 대학 한나 갈치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요새는 오십 마지기, 삼십 마지기 지어가꼬는 대학 못 갈쳐. 일꾼 둘 데꼬, 그때는 농경사회라 구십구 프로가 다 가난했어, 가난했어. 그라믄 인자 쪼깐 밥술이나 묵은 사람은 고무신을 신어. 그때 껌은 고무신을. 근데 나는 고무신도 업써. 아부지가 짚신을 삼아줘. 그라믄 요 저 ..

용산면 2017.09.19

[용산면] 누나는 목화 심어 베를 짜고 동생은 성을 쌓고

누나는 목화 심어 베를 짜고 동생은 성을 쌓고 ▶ 말 먹인 활성안이 있다. 그 성을 놓고 전설이 있다. 누나는 목화 심어 베를 짜고 동생은 저 성을 쌓는 내기를 했다. 누군가 지면 죽는 내기였다. 누나가 보니 동생 일이 하 세월이라, 동생 죽는 꼴 볼 수 없어 포기하고 잠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라고 쩌그 활성안에는 말 먹였다, 그래. 성이 있는데 그 성 같이 큰 성은 없어, 밸라. 흙으로 매논데 돌로 매논데. 가서보믄 이 둘레가 아마 한 20리 될랑가. 흙으로만 모아논 디도 어마어마하고 돌로 탁 탁 세와서 해논 데는, 그 힘이 없을 꺼인디 기계가 없을 꺼인디. 갈 수도 없고 먹척통에서 탁 짤라분 거 맹이로 한 오 메타 그런 데도 한반 데가 있어. 그래가꼬 인자 그 활성안인데 그것을 인자 정부에서 키..

용산면 2017.09.19